![<strong>심장병 </strong>[게티이미지뱅크 제공]](http://www.hmj2k.com/data/photos/20230624/art_16869744426635_618ae9.jpg)
남매인 A(66)씨와 B(60·여)씨는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호흡곤란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흔치 않은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
정밀 검사 결과 정확한 병명은 '유전형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 심근병증'(Hereditary ATTR-CM)이었다.
체내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인 '트랜스티레틴'(TTR)이 유전적인 이유로 잘못된 단백질 접힘 과정을 거치면서 심장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고, 이게 심장 근육 기능에 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이 질환은 TTR 단백질을 안정화하는 약물로 치료할 수 있지만, 다양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데다 인식률도 낮아 조기 진단이 어려운 게 특징이다.
A씨의 경우 입원 후 약물치료로 증상이 다소 안정됐지만, 이미 TTR 단백질 침착이 심한 상태였다.
이에 의료진은 A씨에게 심장 이식을 권고했다. 하지만, A씨는 안타깝게도 심장 이식을 미루다가 증상이 악화해 사망했다.
이런 오빠를 곁에서 지켜본 동생 B씨는 서둘러 심장 이식을 결정했고, 한참을 대기하다 타인의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었다. 수술 당시 B씨의 심장은 TTR 단백질이 이미 돌처럼 굳어 있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이후 질환에 대한 걱정은 A씨와 B씨의 가족에게 이어졌다. 이 질환의 가족력이 갖는 무서움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남매의 가족을 대상으로 심장병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심장 초음파에서 보이지 않던 질환이 A씨의 아들과 조카에게서도 발견됐다. 이들은 현재 TTR 약물을 쓰며, 안정적으로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B씨는 "유전성 심장질환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금이라도 진단이 늦고, 이식시기를 놓쳤다면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상황이었다"면서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남은 가족과 함께 꿋꿋이 헤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를 진료한 인천세종병원 김경희 심장이식센터장은 "갑작스러운 심장 이상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서 가족 간 유전력이 확인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런 심장질환은 조기 발견이 치료의 핵심인 만큼 가족력이 있다면 경각심을 갖고, 증세가 없더라도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유전성 심장질환은 비후성 심근병증과 확장성 심근병증이 대표적이다.
이중 '심장이 두꺼워진다'는 뜻을 가진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의 근육이 커지고 두꺼워지면서 심장 밖으로 피가 나가는 통로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비교적 흔한 심근증으로, 부정맥에 의한 돌연사와 운동 시 호흡곤란, 말기 심부전으로의 악화, 심근허혈로 인한 흉통이나 실신, 뇌졸중 등 치명적 합병증을 유발한다.
문제는 환자의 앞선 환자의 사례처럼 절반 정도에서 유전력이 관찰되지만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센터장은 "환자 중에는 심장이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같은 가족이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어 당뇨병과 혈압 조절만으로 관리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후성 심근증 환자는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 격렬한 운동, 폭음 등은 삼가고, 사우나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료법은 심장을 안정시키는 약물치료를 우선 진행한다. 만약 돌연사 위험이 크면 제세동기를 삽입할 수 있다. 환자에 따라 거대해진 심장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이 이뤄지기도 한다.
다만, 유전적 소인을 가진 심근병증은 3대에 걸친 가족력 검사가 필요하다. X-선 검사, 심전도 검사, 심장 초음파, 유전자 검사가 필수적이다.
확장성 심근병증은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폐·간·콩팥 등 각종 장기가 기능을 잃으면서 사망에 이르는 중증 심장질환이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의 심장이나 인공 보조심장을 이식하는 게 대표적인 치료법이다. 비후성 심근증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20~30%가 유전성을 띤다.
만약 유전자 검사에서 확장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았다면 술·담배를 끊고 당뇨병과 고혈압을 조절하면서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으면 적절한 시기에 좌심실 보조장치 삽입 후 심장 이식을 고려해야 한다.
김경희 센터장은 "심장질환 중에서도 심근병증은 가족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불필요한 걱정이나 안이한 태도 모두 좋지 못한 만큼 병을 제대로 알고, 조기 발견해 치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