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연합]](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625/art_17503074340175_d1ad8d.jpg)
우리네 식탁에서 흔하지만, 좋은 건강 식재료가 있다. 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 작물로 꼽히는 이 식재료는 다름 아닌 감자다.
어려운 시절 구황작물로 귀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삶고, 굽고, 튀기며 다양하게 즐기는 음식이다.
강원도와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우리나라의 주요 재배 지역이 됐다. 강원도 사람만 알아듣는 말 중 '감자바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감자밥, 감자수제비, 감자조림, 감자전 등 지역 특색을 살린 음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무엇보다 감자의 비타민 C는 전분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가열해도 영양 손실이 적다. 감자 속 칼륨은 몸속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을 낮추고, 감자 전분은 위를 보호해 위염, 위궤양에도 도움을 준다.
감자즙은 피부를 진정시키고 미백 효과도 있어 오래전부터 자연 건강 요법으로도 쓰여 왔다.
약선에서 감자는 '맛이 달고 성질이 평하다'고 나와 있어 위와 대장에 좋은 식재료로 평가한다. 또한 기를 보하고 비장을 튼튼히 한다.
위를 조화롭게 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어 병후 회복기나 만성 피로에 특히 권장되는 식재료다.
◇ 어머니와 함께한 감자 캐기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감자를 캤다. 어느 날, 해가 아직 낮게 걸려 있는 이른 아침, 아버지는 바지게를 메고 어머니는 호미와 괭이를 들고 부지런히 감자밭으로 향하셨다.
산자락을 따라 경사진 우리 집 텃밭, 그곳은 언제나 감자의 자리였다.
봄이면 어머니는 감자를 심으시고, 장마가 오기 전에 서둘러 그것을 캐내셨다. 감자를 모두 수확하고 나면, 그 자리에 다시 거름을 듬뿍 뿌리시고 여름의 끝자락, 8월이면 가을 감자를 또 심으셨다.
감자 재배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 바로 '감자 북주기'다. 이 작업은 감자 줄기 주변의 흙을 모아 '북돋아 주는' 작업이라 북주기라 불린다.
감자 북주기는 감자가 햇빛에 노출되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고, 더 많은 감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날, 감자밭에 도착하니 감자잎은 누렇게 마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몇 번 북을 주던 봄날이 떠올랐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북을 줘야 풀을 없애고, 감자가 더 잘 자랄 수 있단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나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마른 줄기를 살짝 잡아당기니 큼직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왔다.
아버지는 기쁜 얼굴로 "올해도 감자가 잘됐구나" 하고 웃으셨다. 캐낸 감자를 아버지는 바지게에 지고, 어머니는 광주리에 이고, 그렇게 여러 번 오가며 집으로 옮기셨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상한 감자를 골라내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감자만 골라 광으로 가져가셨다. 구멍 숭숭 난 싸리 광주리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감자를 차곡차곡 쌓으셨다.
"이렇게 보관해야 감자가 싹을 잘 틔우지 않아, 가을 감자를 캘 때까지 오래도록 먹을 수 있단다."
어머니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작은 감자는 따로 모아 조림용으로 남겨두셨다.
어머니는 우물가에서 감자를 씻으셨다. 껍질을 깎고 감자밥을 준비하셨다. 광에서 꺼낸 옥수수쌀과 쌀을 함께 씻어 조리로 일어내시고, 감자와 같은 비율로 솥에 넣으셨다.
아궁이에 불이 피어오르고, 곧 부엌 가득 구수한 감자밥 냄새가 퍼졌다.
어머니는 냄비에 작은 감자를 골라 숯불 화로에 올려놓고 간장과 마른 고추를 넣어 은근히 졸이셨다. 또, 아궁이에 남은 숯불 속에 감자를 묻어 구워 주시기도 했다.
그때는 장마가 곧 시작될 때였다. 어머니는 감자의 맑고 담백한 기운으로 소화기관을 튼튼히 하고, 무더운 여름과 장마철의 습기를 몰아내야 한다고 하셨다. 여기에 오이, 목이버섯, 옥수수쌀, 햇보리 쌀 이 모두가 장마철의 좋은 보양식이라며, 특히 장마 때는 감자를 넣은 보리밥이 최고의 약이라고 강조하셨다.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무병장수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첫걸음이란다. 많은 이들이 장수하는 법을 찾지만, 정작 마음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지. 음식으로 감정의 불균형, 기혈 순환의 장애를 조절하는 것이 참된 양생이란다."
어머니는 늘 음식으로 우리 가족의 마음과 몸을 어루만지셨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피어난 많은 음식은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생명이었다. 어린 시절, 감자밭에서의 그날은 내게 남은 오래된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 손자병법으로 본 감자 요리
손자병법 구변(九變)의 장을 다양한 감자요리에 적용해 유연한 삶의 지혜를 풀어 봤다.
흔히들 인생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늘 같은 전략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고,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끊임없이 적응해야 한다. 고대 병법서인 손자병법에서도 이 점을 강조한 장이 바로 '구변의 장'이다. '구변'이란 상황에 따라 아홉 가지로 전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손자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유연하고 민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직된 자는 망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건강, 심지어 주방의 조리법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음식은 식재료의 조합만이 아니라, 우리 몸을 살리고, 때로는 전술을 바꿔야 하는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감자밥은 기다림의 미학, 몸을 다스리는 음식이다. 감자밥은 옥수수나, 쌀, 혹은 보리쌀과 감자를 함께 천천히 익히는 요리다.
불 조절, 물의 양, 시간 조절이 핵심이다. 밥이 다 지어질 때까지 조리자가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다. 신중하게 준비하고 기다려야만 제대로 된 밥을 얻을 수 있다. 손자가 말한 '안정적일 때는 성급히 움직이지 말라'는 전략과 닮았다.
서두르면 밥이 설익고, 조급하면 감자의 식감이 무너진다. 감자밥은 소화가 잘되고, 장기간 기력을 보충하는 데 좋은 음식이며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감자구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순간의 선택이 필요하다. 구이는 강한 열에서 짧은 시간에 완성된다. 불의 세기, 뒤집는 타이밍, 굽기의 정도가 모든 결과를 좌우한다.
불과 수 초 차이로 구이는 부드러울 수도, 탈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손자가 강조한 '기회가 오면 번개처럼 움직여라'는 전략과 일치한다.
기다릴 때는 기다리고, 움직일 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구이는 빠른 에너지 보충, 체력 강화, 순간적인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음식이다. 다만, 지나치게 태우면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으므로 조리 시 주의가 필요하다.
감자볶음 역시 순간의 변화에 적응하는 민첩함이 필요하다. 볶음 요리는 재료 투입, 양념 배합, 불 조절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조리법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쉽게 탈 수도 있고, 질척거릴 수도 있다.
볶음은 항상 '지금 당장 어떻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손자가 말한 '변화에 실시간으로 적응하라'는 전략과 완전히 일치한다.
준비된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더라도 즉각적 판단이 곧 성공의 열쇠가 된다. 감자볶음에 첨가되는 야채, 해산물, 육류 등을 빠르게 조리해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한다.
특히 감자야채볶음은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해 소화 촉진, 변비 예방,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감자고기볶음은 양질의 단백질과 철분 보충에 적합하다.
이처럼 볶음은 활동량이 많을 때, 즉각적인 에너지와 영양이 필요한 상황에서 매우 유익한 음식이다.

감자전은 지속적인 조율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전은 만들 때 가장 많은 변수에 부딪힌다. 반죽 농도, 기름 온도, 재료의 수분 함량, 뒤집는 타이밍까지 끊임없이 조절해야 한다.
한 장의 전을 부치기 위해 수없이 조율하고 관찰하는 것이 필수다. 손자가 강조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유연함'을 상징한다. 순간의 실수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끝까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결론은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진짜 지혜다. 감자밥은 기다림의 전략, 구이는 기회의 순간, 볶음은 순간 판단, 전은 지속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주방에서 흔히 만나는 이 네 가지 조리법은 손자가 말한 구변의 장, 유연한 전술의 진정한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내 몸의 건강을 챙기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감자밥처럼 천천히 체질을 바꿔야 하고, 어떤 순간은 구이처럼 단기간에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볶음처럼 빠르게 영양을 채워야 할 때도 있고, 전처럼 여러 요소를 조율해 지속적인 균형을 잡아야 할 때도 있다.
손자는 말했다.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고정된 전략은 없다."
지난 50여년을 돌아보면 주방에서 손자가 말한 '장수는 아홉 가지 변화의 법칙을 익혀야 한다'는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고객의 건강 상태, 날씨, 식습관, 계절의 변화 등 매 순간 다양한 조건을 끊임없이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조리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주방에서 매일 실천해온 음식 손자병법이다.
전쟁도, 인생도, 음식도 결국 한 가지 답은 없다. 바뀌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조율하고, 적응하며, 건강한 삶을 위해 오늘도 조용히 불 앞에 선다.
음식은 곧 삶의 전술이며, 거기서 인생을 배운다. '구변의 장'은 늘 주방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