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하얀 설원을 누비며 겨울을 즐기고픈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의 기다림도 커지고 있다.
◇ 수익성 악화 등으로 곳곳 스키장 휴·폐장 또는 축소 운영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는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교통편이 좋아 인접한 이천시 마장면 지산리조트스키장과 함께 스키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수도권의 대표적인 스키장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난 14일 찾아간 이 스키장 슬로프에는 잡풀만 무성했다.
스키어들이 이용하던 편의시설 등은 녹이 슬거나 벽면 페인트가 벗겨져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스키어들을 쉴 새 없이 실어 나르던 리프트가 멈춘 채 덩그러니 공중에 매달려 있어 이곳이 스키장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 리조트로 향하는 도로변에도 예전에는 스키용품 대여점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키 대여'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한 단층건물이 시야에 들어왔으나 공실이 된 지 오래인 듯 보였다.
1982년 개장했던 슬로프 8개 규모의 파인리조트 스키장은 2022년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현장에서 만난 리조트 관계자는 "스키장은 폐장한 지 오래됐고, 한동안 눈썰매장만 운영했었는데 그마저도 지금은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이 스키장뿐이 아니다.
2021년 1월 리프트 역주행 사고가 발생했던 경기 포천시 베어스타운 스키장도 이듬해인 2022년 10월 31일부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앞서 남양주시 화도읍 스타힐리조트 스키장(옛 천마산스키장) 역시 2021년 6월 30일 자로 폐업 방침을 밝혔다.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과 같은 해 개장한 이 리조트 측은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영업이 제한되고 매출이 급감해 폐업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1993년 12월 개장했던 남양주시 호평동 서울리조트 스키장도 2008년 폐장했고, 1976년 강원 용평리조트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강원 고성 알프스세븐리조트 스키장도 2006년 4월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경남 양산시에 있는 에덴밸리리조트 스키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체 7개 슬로프 중 2개만 운영하다가 지난해 겨울에는 1개만 운영한 데 이어 올해도 일단 1개 슬로프를 운영할 예정이지만 실제 운영 여부는 아직 유동적인 상황이라고 리조트 측은 밝혔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이하 스키장협회)에 따르면 1975년 용평스키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문을 연 국내 스키장은 19곳이지만 이 중 6곳이 휴·폐장해 현재는 13곳만 운영 중이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 운영 중인 스키장 가운데서도 2~3곳이 경영 악화로 슬로프 축소 운영 또는 폐업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겨울 기온 상승으로 눈 적고 설질도 나빠져…이용객 감소 악순환
스키장 업계에 따르면 전국 스키장들의 잇따른 휴·폐장 및 축소 운영 등은 일부 업체의 경우 다른 내부 문제도 있지만 지구온난화 등 기온 변화, 스키 인구 감소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스키장협회 자료에 따르면 강원 평창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은 2010년 영하 8.2도에서 2015년 영하 5.2도, 2020년 영하 3.2도로 높아졌다.
경기 용인·이천지역 1월 평균 기온도 2010년 영하 6.0도, 2015년 영하 1.9도, 2020년 영상 0.9도로 올랐다.
이에 따라 용평리조트의 경우 인공눈을 만드는 비용이 2010/2011년 시즌 10억4천800여만원에서 2015/2016년 시즌 10억9천500여만원, 2019/2020년 시즌 14억8천800여만원으로 상승했다.
다른 스키장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스키장협회 측은 설명했다.
겨울 기온이 올라가면서 스키장 운영 일수도 감소해 용평스키장은 2017/2018년 시즌 138일에서 2019/2020년 시즌 129일로 줄었고, 같은 기간 덕유산스키장은 107일에서 93일로, 웰리할리스키장은 128일에서 105일로, 베어스타운은 113일에서 87일로, 지산스키장은 109일에서 94일로 감소했다.
전국 스키장 슬로프 이용객 역시 2010/2011년 시즌 648만여명에 이어 2011/2012년 시즌 686만여명으로 증가한 뒤 감소세로 전환되면서 코로나19 사태 기간인 2020/2021년 시즌에는 146만여명으로 줄었다. 2011/2012년 시즌보다 무려 78.8%나 감소한 것이다.
이후 다소 회복돼 2024/2025년 시즌 435만여명으로 증가했으나, 여전히 피크 시즌보다 36.7% 적은 것이다.
젊은층 이용객 감소와 여가 트렌드 변화로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스키장들의 경영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스키장협회 측은 "지구 온난화로 스키장들의 제설 비용이 늘고, 매시즌 개장 날짜가 늦춰지는 것은 물론 운영 일수가 감소하면서 스키장들이 갈수록 매출 감소,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힐리조트 스키장 측은 폐업 당시 안내문을 통해 "스키장을 40년 운영하면서 몇 해를 제외하고 항상 적자를 기록했고, 스키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와 대형 스키장 개장, 기후 온난화에 따른 겨울철 스키 영업 일수 감소, 제설 등으로 인한 운영비 증가로 경영이 악화해 부득이 폐업한다"고 밝혔다.
◇ 지역경제에 큰 타격…"지원 등 활성화 대책 마련 필요"
스키장 폐장 및 휴장은 지역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개의 슬로프를 갖춰 수도권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포천 베어스타운 스키장 폐장으로 스키용품 대여점을 비롯해 주변 상권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1980년대까지 강원 설악권 지역 경기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던 고성 알프스세븐리조트를 재개장하기 위해 지자체와 주민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스키장협회 조원득 사무국장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현재 50만원선인 스키장 시즌 이용권이 언젠가는 몇백만원이 될 수도 있고, 스키를 즐기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 할 수도 있다"며 "스키장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큰 만큼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도 적극적인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스키장을 폐업할 경우 원상 복구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실제 운영하지 않으면서도 부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치하는 스키장들이 있다"며 "스키장들이 비시즌 사업을 다각화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스포츠 시설들과 같이 스키장도 규제만 하지 말고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