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의약품 적응증 확대로 건보지출 375배 폭증"

10년간 57개 신약 적응증 확대로 건보지출 1조3천억↑…적응증 확대 평균 4년소요
제약회사 '엥커링' 전략도 영향…"총액예산제·비용효과 재평가 등 검토해야"

 요즘 의약품의 적응증은 하나에서 여러 개 질환으로 넓혀지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체내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면역세포(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개념의 면역항암제다.

 특정 암에만 쓰이던 약이 다른 암종이나 병기에도 적응증을 넓혀 쓰이면서 환자 선택지가 크게 느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의약품의 적응증 확대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13일 연세대 약학대학 한은아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국제 보건 정책 및 관리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Policy and Management)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2∼2022년 우리나라에서 적응증이 확대된 의약품은 총 57개로, 이 기간 이들 의약품의 연간 총 건강보험 지출액은 1천억원에서 1조4천600억원으로 15배 급증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위험분담제'(RSA)를 적용받는 26개(46%) 고가 의약품의 지출액은 10년 동안 375배나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위험분담제는 고가의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처럼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만, 그 효과나 재정적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신약의 보험 적용을 위해 정부(건강보험공단)와 제약회사가 재정 위험을 함께 분담하는 제도를 말한다.

 신약 등재 후 처음 적응증을 확대하기까지는 평균 4년 1개월(49개월)이 걸렸으며, 새로운 적응증을 추가했을 때 약값은 평균 4.4% 감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약품 적응증 확대에 따른 건강보험 지출액 증가의 이유로 한국이 시행 중인 '단일 약가 제도'와 제약회사의 전략적 접근 등이 거론된다.

 단일 약가 제도는 하나의 의약품에 대해 하나의 상한 금액을 정해두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적응증이 추가될 경우에는 의약품의 상한 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약값을 조절한다.

 하지만 초기 적응증의 시장 규모가 작고 확대된 적응증의 환자 규모가 훨씬 크다면 이후 의약품 가격을 인하하더라도 사용량 증가 폭이 이를 압도해 총지출이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적응증 추가 의약품의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는 의약품의 적응증이 확대된 후 평균 70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10년 동안 적응증 확대가 있었던 의약품의 건강보험 지출액 증가율은 30.8%로, 적응증 확대가 없었던 의약품의 6.5%보다 증가세가 훨씬 가팔랐다.

 연구팀은 제약사가 종종 '소규모 시장'에서 '대규모 시장' 순으로 약물의 적응증을 확장하는 전략도 건강보험 지출액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봤다.

 처음에는 환자 수가 적은 희귀암이나 말기 환자 등을 대상으로 보험 등재를 신청해 비교적 높은 약값을 확보한 다음 환자 수가 많은 질환으로 적응증을 넓혀 매출을 늘린다는 것이다.

 한은아 교수는 "제약회사가 초기 의약품 가격을 높게 유지한 뒤 가치가 낮은 적응증에 대해서는 낮은 가격으로 협상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적응증에 의약품을 먼저 출시해 가격을 '앵커링'(anchoring) 한 후 정부와의 적응증 확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려면 약물 등재 이후에도 실제 사용량과 지출액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의 총재정 지출 한도를 정해놓는 총액예산제, 적응증 확대 시 비용효과성 재평가 등과 같은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되는 '적응증별 약가 차등제'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근거 부재와 추가 지불비용 발생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족 등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 교수는 "현재는 의약품 적응증 확대에 따른 재정 영향 평가가 사후적으로만 이뤄지고, 확대 과정에서의 근거 자료 공개도 제한적"이라며 "새로운 치료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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