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은빛 찬란한 인제 자작나무숲 길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작나무숲에 안기다

 껍질이 하얀 나무들이 파란 하늘에 닿을 듯 곧게 뻗어 있다. 은빛 수피가 햇살을 받아 빛난다. 수많은 자작나무와 찬란한 빛이 만들어내는 고운 화음은 숲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직으로 높이 자란 은빛 자작나무들은 신비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무는 초여름의 싱싱한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반짝거렸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나뭇가지 끝에 달린 초록 잎들은 바람 불 때마다 한꺼번에 손을 흔들었다. 나무, 햇살, 바람의 교향악이었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 숲은 연륜이 그리 깊지 않은데도 그 아름다움으로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곳은 원래 소나무 숲이었다. 솔잎혹파리 피해 때문에 벌채한 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7년 동안 138㏊에 자작나무 약 70만 그루를 심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방돼 많은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뮤직비디오 등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제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명품 숲이 됐다.

 주차장 옆 숲 입구에서 1시간 남짓 완만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20∼30년생 자작나무 41만 그루가 밀집한 숲을 만난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도 자작나무가 특히 많은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다. 6㏊ 규모인 이 숲은 명품 숲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 숲을 중심으로 걷기 좋은 탐방로가 7개 조성돼 있다.

 주요 탐방로는 자작나무코스(0.9㎞), 치유코스(1.5㎞), 탐험코스(1.2㎞), 힐링코스(0.86㎞), 자작나무진입코스(0.53㎞) 등이다. 하드코스(2.24㎞), 위험코스(2.4㎞)도 있는데, 2시간 이상 걸리는 탐방로다. 주로 등산객들이 이용한다.

 
자작나무숲 탐방로 [사진/전수영 기자]

 우리는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입구인 안내소에서 걷기 시작해 자작나무코스∼탐험코스∼야외무대∼전망대∼힐링코스∼자작나무진입코스를 거친 뒤 출발지인 안내소로 되돌아왔다. 약 7㎞를 걸은 셈인데 2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자작나무코스와 자작나무진입코스는 자작나무 군락을 따라 조성돼 있다. 나무 데크나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걷기에 쾌적했다.

 탐험코스는 여느 산행길과 비슷하다. 활엽수가 우거지고, 침엽수가 적당히 섞여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으며 맑은 계곡이 내는 청량한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었다.

 힐링코스는 능선 따라 나 있는, 꽤 가파른 길이다.

 탐험코스와 힐링코스에는 자작나무가 거의 없었다. 대신 이곳이 예전에 소나무 숲이었음을 말하는 듯, 굵은 소나무밭이 군데군데 있었다.

 자작나무 숲 탐방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등산객들은 능선으로 이어진 힐링코스, 하드코스, 위험코스를 연속해 걷는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탐험코스에서는 길옆 맑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자작나무 숲에는 포토존, 생태연못, 야외무대, 숲속교실, 인디언집 등 쉼터와 볼거리가 있다. 포토존은 사방이 자작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디에다 카메라를 갖다 대도 자작나무가 찍히는 자리다.

 숲에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게 있다. 곳곳에 세워져 있는 '나무가 아파서 울고 있어요'라는 푯말이다. 하얀 수피가 신기해서인지 껍질을 벗겨 보거나 수피에 낙서나 조각을 하는 행위가 적지 않아서 세워진 푯말이다.

 실제로 훼손된 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명품 숲의 완성자는 숲 관리자가 아니라 탐방객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졌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華)라고 한다. '결혼식을 올린다'는 의미의 '화촉을 밝힌다'에서 화촉은 자작나무 껍질을 뜻한다.

 옛날 초가 없을 때 기름기가 많은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처럼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박달나무와 형제라고 할 만큼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한 자작나무는 벌레가 안 생기고 오래도록 변질하지 않는다. 닦으면 광택이 좋아져 공예품 재료로 사용된다.

 신라 고분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위에 그린 것이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

 자작나무라고 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에 숲이 울창한 북방 지역을 떠올린다. 해발 800m 이상의 추운 지역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는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에 많다.

숲속 교실, 인디언 집 등 쉼터가 있는 자작나무숲 광장 [사진/전수영 기자]

 백두산에는 백옥처럼 하얀 아름드리 자작나무가 흔하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중부 이북 산간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산림청이 조성했지만, 자생한 자작나무도 남한에 더러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특히 사랑받는 것은 규모가 크고, 나무들이 하나같이 곧게 자라 형태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숲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나무들은 높이가 20∼30m에 이르고, 사람 가슴 높이 지름은 15∼20㎝ 정도다.

 이곳 자작나무들은 햇볕을 많이 받기 위해 높이 자라고, 높이 자라기 위해 곁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곧게 올라간다.

 인제 자작나무 숲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눈 내리는 겨울이라고 답하는 탐방객이 많을 것 같다. 

 나뭇잎을 모두 떨궈 하얀 나무줄기만 남은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리면 세상은 그야말로 온통 순백의 세계로 변하기 때문이다.

 숲의 설경은 몽환적이고 이국적이다. 그러나 이 숲이 아름답지 않은 계절은 없다. 새싹 돋는 봄에는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감동을 안긴다. 여름에는 초록빛과 햇살의 향연이 눈부시다.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노란 자작나무 잎이 색다른 조화를 이룬다.

 전정일 산림교육전문가는 숲을 한번 방문했던 탐방객이 철을 바꿔 다시 찾는 것은 이처럼 사계절의 매력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작나무 진입코스 중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탐방객 [사진/전수영 기자]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평일이었는데도 탐방객이 적지 않았다. 감염병 사태가 터지기 전 주말 방문객은 5천∼6천 명이었다. 요즘에도 주말에 2천 명 정도가 숲을 탐방한다.

 이 숲은 월·화요일에는 일반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대신 유아 숲 체험장으로 이용된다. 잘 가꿔진 숲에서 마음껏 뛰놀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산림복지의 진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까지 가려면 임도를 거쳐야 한다. 임도에는 '윗길'이라고 불리는 원정임도(3.2㎞), '아랫길'인 원대임도(2.7㎞)가 있다. 원정임도를 걸어 올라가 숲을 탐방한 뒤 원대임도로 내려가는 방문객이 많다.

 그러나 이곳을 여러 번 찾은 탐방객은 숲길로 이어지는 원대임도를 걸어 올라갔다가 원정임도로 내려오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늘진 숲길이 걷기에 좋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올라가든 주차장에서 임도를 걸어 올라갔다가 숲을 탐방하고 내려오면 대개 3시간 정도 걸린다.

 자작나무는 '나무의 여왕', 자작나무 숲은 '숲의 백미'라고 일컬어진다. 신비롭고 고고한 자작나무가 나무를 사랑하고 숲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기다린다. 자작나무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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