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자체로 수명 5년 단축

후성유전 노화 1.9 ∼4.8년 가속, 텔로미어도 짧아져
미국 UCLA 의대 연구진, 저널 '아이사이언스'에 논문

 흔히 '에이즈'(AIDS)로 통하는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은 HIV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병하는 전염병이다.

 그러나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곧바로 에이즈로 발병하는 건 아니다.

 그냥 HIV 감염 상태인 사람은 에이즈 환자와 구분해 'HIV 감염인'이라고 한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은 매우 무뎌졌지만, 에이즈를 완치하는 보편적인 치료법은 아직 개발된 게 없다.

다만, 1995년에 나온 고활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HAART)은 많은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HAART는 NRTI(뉴클레오타이드 유사 역전사 효소 억제제) 등 몇 가지 항바이러스 제제를 병행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이다.

완치는 못 해도 중증 진행은 막는 이 치료법의 등장은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뿌리부터 바꿨다.

요즘 에이즈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어도 일반인의 인식에서 에이즈는 이제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이 됐다.

그런데 HIV 감염의 숨겨진 위험을 알리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HIV에 감염되면 그 자체로 노화가 빨라져 수명이 5년가량 단축된다는 게 요지다.

HIV는 노화와 연관된 생물학적 과정을 재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피험자에 따라 감염 후 2년 또는 3년까지만 관찰했는데도 조기 노화 정도는 심했다.

HIV 감염자는 아직 발병 전이라고 방심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보건 당국도 이런 감염자를 일찌감치 찾아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의대의 배스 제이미슨 혈액학 종양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6월 30일(현지 시간) '셀 프레스'(Cell Press)의 오픈 액세스 저널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HIV 감염과 노화 촉진

이전의 연구 결과를 보면, HIV 감염자의 발병을 억제하기 위해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를 투여하면 노화로 인한 심장 및 신장 질환, 쇠약증, 인지 장애 등이 조기에 올 수 있다.

제이미슨 교수팀은 이번에 HIV 감염 자체가 노화를 촉진한다는 걸 구체적인 실험 데이터와 함께 확인했다.

연구팀은 HIV 감염 남성 102명의 보관 혈액 샘플을 분석했다.

감염되기 전(최장 6개월)과 후(2년 또는 3년)에 채취한 혈액 샘플을 서로 비교한 것이다.

1984년 미국 전역에서 시작된 '다기관 에이즈 코호트 연구'(Multicenter AIDS Cohort Study) 등록자 중에서 피험자를 선별했다.

연구의 초점은 HIV가 DNA 후성유전 메틸화(epigenetic DNA methylation)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맞춰졌다.

메틸화는 효소의 작용으로 유전자, 단백질 등에 메틸 그룹이 결합하는 것이다.

DNA 메틸화는 주로 시토신과 아데닌 염기에 메틸기가 추가되는 형태로 이뤄진다.

질병이나 환경 등의 외부 요인으로 이런 후성유전적 변화가 생기면 DNA 자체는 변하지 않은 채 DNA 발현 패턴 등이 달라진다.

연구팀은 서로 접근법이 약간 다른 4개 유형의 '후성유전 시계'(epigenetic clocks)로 노화도(measures of aging)를 측정했다. 후성유전 시계는 생물학적 연령의 가속 정도를 추정치로 보여준다.

여기에다 텔로미어(telomere) 길이 측정을 추가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양쪽 끝을 모자처럼 감싸 보호하는 DNA 조각을 말한다.

세포 분열이 반복되면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지고, 그러다가 어느 한계에 이르면 세포 분열이 중단한다.

인간의 염색체(청색)와 그 말단을 덮은 텔로미어(녹색)

후성유전 시계로 측정한 결과 HIV 감염자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를 쓰지 않아도 예외 없이 노화가 가속됐다.

이는 짧게 볼 때 1.9년, 길게는 4.8년이나 수명이 단축되는 것과 같았다.

텔로미어도 감염 직전부터 시작해 감염 후 2년 또는 3년이 될 때까지 눈에 띄게 짧아졌다.

HIV에 감염되지 않은 피험자는 같은 기간 이런 노화 가속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제이미슨 교수는 "조기 노화의 생물학적 특징이 나타나는 데 에이즈 바이러스가 관여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면서 "노화 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을 조기 진단하고, 새로운 치료 표적을 찾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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