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허가에도 '신의료기술' 문턱 못넘어 8년 허비"

의료계 "신의료기술 평가는 과도한 이중 규제…'이권 카르텔' 있는지 살펴야"

 의료기기를 제조·판매하는 A사는 영국의 B사와 무릎 '반월상연골판' 수술에 쓰이는 제품에 대한 한국 내 독점 판매권 계약을 했다.

 반월상연골판은 무릎 관절 내부의 완충작용을 하는 반달 모양의 연골로, 운동이나 교통사고 등에 의한 손상이 많은 편이다. 붓고 통증이 생겨 걸을 때 무릎을 펴거나 굽히기 힘든 게 특징이다.

 주된 치료법은 손상 부위가 클 경우 전체를 제거하고 다른 사람의 반월상연골판을 이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타인의 반월상연골판 공급이 일정하지 않고 약 1천200만원(본인 부담 6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수술 비용이 단점으로 꼽힌다.

 더욱이 코로나19 기간에는 반월상연골판의 수입량이 줄어 국내 환자들의 수술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비해 B사가 개발한 제품은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반월상연골판 부분절제술 후 인조 연골판을 이식하는 방식이다.

 인조이기 때문에 제품의 공급에 어려움이 없고, 수술 비용이 기존보다 50% 이상 저렴한 게 장점이다.

 유럽 통합규격인증(CE) 획득 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수술에 사용되고 있는 이 제품은 10년 이상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 등을 담은 논문 28편이 과학기술인용색인(SCI)급 국제학술지에 발표돼 임상적인 효과도 증명됐고, 다른 대안 치료도 마땅찮다는 게 업체의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 제품에 대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으로부터 신의료기술 심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것이다. 국내에서 제품이 사용되지 않은 데다, 조기 기술로 평가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후 A사의 고행은 이어졌다. 2015년 6월 NECA가 요구한 서류와 SCI급 근거 논문을 추가로 제출했지만, NECA는 이듬해인 2016년 4월에야 "3차에 걸친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회의 결과, 기존기술과 비교한 연구 결과가 부족해 아직은 연구가 더 필요한 단계의 기술로 심의됐다"고 통보해왔다.

 이에 A사는 다시 4년여를 절치부심한 끝에 SCI급 논문을 보완해 2020년 10월 NECA에 2차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NECA는 또 해를 넘긴 2021년 4월 "제품의 안전성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나, 유효성을 확인하기에는 연구 결과가 부족하다"면서 연구가 더 필요한 단계의 기술로 심의됐다고 통보해왔다.

 업체 입장에서는 식약처에서 의료기기로 사용해도 된다는 정식 허가를 획득하고도 또 다른 관문인 신의료기술 문턱을 넘지 못해 약 8년을 허비한 셈이 된 것이다.

 A사 대표는 "2개의 해외 유명 정형의과 전문 의학서적에도 새로운 의료기술로 소개되고, 해외에서 꾸준히 환자에게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는데도 유효성을 확인하기에 연구가 부족하다는 답변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신의료기술 평가위원들이 무릎질환 전문이 아닌 다른 분야의 정형외과 전문의들로 구성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좌절은 비단 A사만 겪은 게 아니다.

 C사는 안과 질환용 레이저기기를 개발하고도 신의료기술 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 세계 최초 타이틀을 포기해야 했다.

 또 D사가 개발한 '보조 로봇을 이용한 척추 수술'은 국내에서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국내 시장 출시가 불발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식품의약품국(FDA) 허가 후 널리 판매되는 사례로 꼽힌다.

 대형 의료기관인 연세의료원도 쓴맛을 봤다. 지난 3월 중성자치료에 들어가려 했지만, 신의료기술 평가를 완료하지 못해 결국 평가가 마무리된 4월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중성자치료는 이미 일본에서 1만5천명 이상의 암 환자에게 시행됐을 정도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기술이지만, 신의료기술 문턱은 높기만 했다.

 무엇보다 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가 중복 과잉규제라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당초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도입됐다.

 아직 안전성·유효성이 평가되지 않았거나, 잠재성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미 식약처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하고 허가한 의료기기에 대해 시장 진입에 앞서 별도의 신의료기술 평가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은 과도한 이중 규제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최근 안전성 우려가 적은 신의료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춰지고 있다지만, 헬스케어 산업을 키우겠다는 전략을 내건 정부 방침에는 아직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또한 A사 대표의 주장처럼 신의료기술 평가 과정에서 NECA가 평가위원을 적절하게 구성했는지 등도 들여다볼 대목이다.

 물론 시장 출시 전의 선택사항으로 국내 연구병원과 데이터중심병원 등에서 임상 정보를 포함한 일정 기간의 사용 결과를 NECA에 다시 제출해야 하는 단서를 붙이는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NECA가 조건부 급여나 선별 급여에 들어가는 신기술들을 3∼5년 동안 철저하게 모니터링함으로써 사후약방문의 의료사고가 터지는 것을 예방하는 조건이다.

 NECA 원장을 지낸 충북대 의대 이영성 교수는 "우리도 이제는 영국과 미국 등 해외 주요국들처럼 신의료기술 신청 건에 대해 '선진입, 후평가' 시스템이 적극 반영되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논란이 되는 기술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Public-CRO기능)을 NECA에 부여하는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고 '이권 카르텔 타파'를 외치고 있다. 이권 카르텔이 손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지속해 국민을 약탈한다는 게 핵심이다.

 혹시 신의료기술 평가 과정에도 이런 이권 카르텔이 있는 것은 아닌지, 허가 및 인증에 목말라하는 의료계·산업계와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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