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필요할 때만 찾는 공공병원…"거점의료 핵심으로 키워야"③(끝)

코로나 대유행 때 '방역 최전선' 섰지만, 대유행 지나자 정부 '외면'
한해 수백억 적자에 필수의료 전문의마저 확보 못해…"민간병원과 경쟁 안돼"
"의료대란 재발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병원 비중 확대하고, 전폭 재정 지원해야"

 정부가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에 대응해 '지역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비상진료대책을 세우자 "필요할 때만 찾고 '토사구팽'할 게 아니라 공공병원을 거점의료의 핵심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주요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대규모로 병원을 이탈하자 지방의료원 36곳 등 66곳의 전국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대응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진료시간을 연장하고, 그에 따른 인건비 등 비용을 적극 지원하는 식이다.

 이에 시민사회에선 "그간 공공병원을 무책임하게 방치했던 정부가 부탁과 격려를 남발하는 행태는 후안무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공병원을 '대응 카드'로 쓸 수 있는 이유는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과 시도의료원, 국립의료원 등이 이에 속한다.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도 정부는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최전선으로 떠밀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5%밖에 되지 않는 공공병원들은 전체 감염병 전담 병상의 92%를 담당했다.

 '코로나 전사'로 최전방에서 싸웠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환자를 인근의 민간 병원에 빼앗겼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운영되면서 진료과가 축소·중단됐기 때문이다.

 한번 떠난 환자들이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된 후에도 1년 6개월 이상 병상 가동률이 30∼40%에 머무는 등 이전의 절반 이하로 줄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현재 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은 병상수는 물론이고 전문의 수나, 가능한 진료 범위에서도 민간 대형병원에 밀려 '거점병원'으로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병원정보에 따르면 전국 지역거점공공병원 중 가장 규모가 큰 서울의료원의 병상수는 일반입원실 569개, 중환자실 41개이다. 수술실은 10개, 분만실은 15개, 응급실은 27개다. 치과의사, 한의사를 제외한 전문의 수는 211명이다.

 반면에 서울의 '빅5'병원 중 병상수가 가장 많은 서울아산병원은 2천424개의 일반입원실을 갖추고 있다.

 서울의료원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중환자실 병상은 249개, 수술실은 76개, 분만실은 10개, 응급실은 93개다. 전문의 수는 1천340명으로, 서울의료원의 6배 이상이다.

 지역 공공의료원은 필수의료 분야의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필수의료 과목의 전문의가 없는 곳도 여럿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35개 지방의료원 중 6곳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었고, 4곳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었다.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곳은 11곳, 신경외과는 15곳, 정신건강의학과는 17곳이었다.

 필수의료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도 상당수이다.

3 5개 지방의료원 중 중환자실은 28개 기관(82.4%), 분만실은 20개 기관(58.8%), 음압격리 병실은 23개 기관(67.6%)에서만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공공병원이 재정 지원을 받아 '빅5' 병원을 대체할 급으로 성장하기는커녕, 적자와 구인난으로 고사 위기라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개한 '2022 회계연도 결산서'에 따르면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손실은 2019년 340억원이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2020년 703억원, 2021년 577억원, 2022년 72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역시 공공의료기관인 서울적십자병원의 의료손실도 2019년 54억원에서 2020년 354억원, 2021년 116억원, 2022년 239억원으로 불어났다.

 서울의료원도 2019년 288억원, 2020년 828억원, 2021년 738억원, 2022년 815억원으로 코로나 때 의료손실이 대폭 증가했다.

 이밖에 전국 각지의 지방의료원 등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공공의료기관들은 2020∼2022년에 전반적으로 의료손실이 크게 늘었다.

 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을 때 코로나 환자를 받느라 다른 환자를 아예 받지 못해 환자들이 병원을 떠났다"며 "지정이 해제된 후에도 환자 수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해 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들은 일반 환자가 줄어 3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떠안아 임금체불 위기"라며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올해 공공병원 적자 보전을 위한 역량강화 사업 예산으로 국비 513억5천만원을 배정했다.

 여기에 지방비를 더해도 1천억원가량에 불과하다. 이는 공공의료기관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보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의사 임금이 30∼50%씩 비정상적으로 올랐는데, 공공병원은 급여 수준이 낮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의사들이) 그만두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지방의료원은 수익이 적은 필수의료·취약계층 진료 비중이 커서 건강보험 급여 진료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메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대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역의료를 책임지고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하고, 정부가 전폭적인 재정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애초에 의료 취약지에는 병원 자체가 없다"며 "돈이 안 되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 민간은 병원을 짓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공공병원을 지어 필수·지역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영완 서산의료원장은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가산하되, 공공병원에는 추가 보상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세부과목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는 인건비가 확보돼야 지역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공공병원에 재정을 투입해 인건비까지 정부 예산제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며 "최소한 인력 운용에 대해서는 예산을 주고 정부가 채용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도 공공병원의 필수의료 시설·장비 확충을 위한 자본뿐 아니라, 필요인력에 대한 인건비 등 경상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재정 운용 원칙이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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