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경영난?…'수백~수천억' 적립금 쓰면 의료개혁 여력 충분

경영난 호소하지만, '빅5' 병원들 수천억원씩 '고유목적금' 적립
건물토지 매입·의료기기 취득 위해 거액 쌓아놔…경쟁적인 '분원 설립' 등에 써
"외형 확대보단 전공의 복귀·의료개혁 위해 써야"…법령 개정은 필요

 전공의 집단이탈 후 대형병원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는 가운데, 병원들이 적립해 온 '고유목적사업준비금'(고유목적금)을 경영 정상화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병원들이 '의료개혁'이라는 체질 개선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영상 출혈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고정자산 취득을 위해 적립해 온 돈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성공적으로 변모하면서 전공의들의 처우를 개선한다면 전공의들의 복귀를 유도하고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데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건물토지 매입 등에 남겨둔 돈 평균 648억원…연세세브란스는 5천억원 넘어

 정부는 병원들에 건강보험 급여비를 당겨서 주는 '선지급'을 실시하며 급한 불을 끄도록 하고 있지만, 전공의 수련병원 74곳에 선지급한 6~8월분 급여비는 1조4천843억원이나 돼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 안팎에서는 경영난 해소를 위해 병원들이 쌓아놓고 있는 고유목적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고유목적금은 비영리법인이 건물과 토지 매입, 의료기기 취득 등 시설 투자나 교육 등의 목적을 위해 적립하는 돈이다. 비용으로 인정받아 법인세를 물지 않는 혜택이 있다.

 이 고유목적금의 규모는 상당히 커서 통상 수백억원 수준이며 많게는 수천억원 규모인 곳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지아 의원에 따르면 관련 자료를 제출한 사립대 소속 25개 의료기관 중 18곳이 올해 상반기 기준 평균 389억1천만원의 고유목적금을 적립하고 있었다.

 연세세브란스병원은 5천551억5천만원이나 됐고, 영남대병원도 1천757억8천만원으로 1천억원이 넘었다. 이들 두 병원의 고유목적금은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작년 상반기보다 118억4천만원, 203억5천만원 각각 늘었다.

 국공립대 병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서울대병원의 경우 1천939억원, 분당서울대병원은 2천717억원, 전남대병원은 350억원을 고유목적금으로 쌓아놓고 있다.

 ◇ 고유목적금, 병원 외형 확대 등에 쓰여…"흑자병원, 적자로 둔갑시키기도"

 고유목적금과 관련해서는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거둬들인 이익을 환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의료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실제로는 큰 흑자가 난 병원이 벌어들인 돈을 고유목적금으로 쌓아놓으면서 적자로 둔갑하기도 한다"며 "병원들은 이렇게 적립한 돈을 외형 확대나 장례식장 사업 등 수익사업에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빅5 병원의 순이익 합계는 4천667억원인데, 이들이 이 기간 고유목적금으로 적립한 돈을 고려하면 실제로 이들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2조원에 육박한다는 추정도 있다.

 대형병원들은 이렇게 적립한 고유목적금을 분원 설립 등 병원의 외형을 확대하는 데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병원들은 현재 경쟁적으로 수도권 지역에서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병원별로는 세브란스병원(인천 송도), 서울아산병원(인천 청라), 서울대병원(경기 시흥) 등 빅5 병원을 비롯해 고려대병원(경기 남양주·과천), 아주대병원(경기 파주·평택), 인하대병원(경기 김포), 경희대병원(경기 하남), 가천대길병원(서울 송파), 한양대병원(경기 안산)이 수도권에서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들 병원의 분원 설립으로 2028년 수도권에 6천600개 이상 병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수도권에 있는 대형병원의 병상은 약 3만개로, 이대로 분원이 추진되면 기존 병상의 20%가 넘는 신규 병상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의료 인프라의 '수도권 쏠림'과 지역의료 붕괴가 심각한데, 대형병원의 분원들이 수도권에 대대적으로 생기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는 '병상 공급과잉'이라는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 병상 수는 2021년 기준 인구 1천명당 12.8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3개의 약 3배에 달한다.

 병원들이 외형 확대에 골몰하는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7년에는 약 10만5천 병상(일반병상 및 요양병상)이 과잉 공급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 "외형 확대보단 의료개혁에 고유목적금 써야"…법령 개정은 필요

 고유목적금을 고려할 경우 '빅5' 병원이 보유한 현금(단기금융상품 포함)은 작년 말 기준으로 1조5천억원에 육박한다는 추정도 제기된다.

 이에 의료개혁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병원들의 외형 확대 등에 고유목적금을 쓰게 할 게 아니라, 전공의 복귀를 위한 급여 인상과 처우 개선 등에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병원들은 이런 방안에 대해 내키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비영리 법인인 병원에게 고유목적금은 미래 투자를 위한 비용인 만큼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고유목적금은 정해진 기간 내에 정해진 목적과 용처 등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며 "의료장비를 구입하고 환자를 위해 쓰려면 적당히 적립해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 복귀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인 만큼, 전공의 복귀 등을 위한 의료개혁에 고유목적금을 사용하는 것은 환자를 위해 돈을 쓴다는 본래의 취지에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의료 전문가는 "전문의 중심병원으로의 성공적인 전환과 전공의 처우 개선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하는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고 및 건강보험 재정 투입과 함께 병원들의 고유목적금을 의료개혁에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유목적금을 인건비 등에 사용하려면 국세청이 이를 예외적으로 인정해주거나, 법인세법 시행령이 개정돼야 한다.

 한지아 의원은 "병원들이 경영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적립한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인건비 등 결손 보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인세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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