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1년] ② 여전히 전공의 없는 병원…남은 의료진 '번아웃'

의료 공백 장기화에 일부 병원은 환자 줄어…갈 곳 없는 환자들 불안 여전
의사·간호사 과중한 업무 시달리다 줄사표도…"올해엔 의정갈등 해결돼야"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전공의 이탈 등으로 1년 가까이 의료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장에 남은 의료진들은 곳곳에서 '번아웃'(탈진)을 호소했다.

 의정 갈등 여파에 따른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일부 병원에서는 아예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의료 차질의 일상화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 경증 환자 빠져 일부 병원 여유…환자 불안은 여전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대기 환자를 부르는 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A씨는 "부천에서 병원에 갔는데 전공의가 없어서인지 수술을 못 한다고 했다"며 "5시간이나 지나 겨우 이 병원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외래 진료 현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환자들로 북적였다.

 오전 10시가 넘어가자 접수대에 표시된 대기 번호표 숫자는 무려 1천명에 다다랐다.

 최근 암 진단을 받은 B씨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에 곧장 예약했지만 초진을 받기까지 두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탓에 2차 병원에서 수술받기로 했다.

 B씨는 "환우와 보호자가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초진조차 예약하기가 어려워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며 "아픈 국민을 위해서라도 해결책이 빨리 도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전공의의 빈자리가 이젠 일상이 되면서 일부 진료과는 부족한 여건 속에 나름의 안정을 찾아가며 새로운 현실에 적응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대학병원은 경증 환자 방문이 줄어 전체 내원객이 줄기도 했다.

 광주·전남의 상급병원인 전남대병원은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 모습이었다.

 대전 건양대병원도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건양대병원 관계자는 "1년간 경증 환자는 일반 종합병원으로 가고,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는 중증질환 환자가 주로 방문하는 상황이 자리 잡으면서 예년에 비해 50% 정도 내원 환자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충남대 세종병원 응급실도 오전 10시께 소아 환자 1명, 성인 환자 2명 등 3명의 환자가 진료받는 등 대체로 여유 있어 보였다.

 다만 이 병원은 의정 갈등 이후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는 등 의료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홀수일에만 성인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고 일부 짝수일은 야간 진료가 불가능하다.

 ◇ 전공의 공백 메운 의료진…곳곳서 '업무 과중' 호소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가 떠난 대학병원들은 지난 1년간 경증 환자 진료를 줄이면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들의 공백은 의대 교수와 전임의, 진료 지원(PA) 간호사 등이 메웠다.

 그러나 의료진 한명이 맡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내부에선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그동안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내과, 정형외과 등에 소속된 의료진의 업무 피로도가 극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에게서는 '엉망진창', '자포자기', '줄사표', '다 무너졌다' 등의 거친 표현이 서슴없이 나왔다.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서울대병원 소속의 한 교수는 "연구나 교육으로 자기 보람을 찾고자 했던 이들이 많이 지쳐서 그만두거나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도 "통계적으로 잡히진 않지만 현장에서 보는 (진료의) 질적 퇴보가 명확히 느껴진다"며 "이로 인한 좌절감 같은 게 의료 현장에 만연해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역 대학병원의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강원대병원의 한 교수는 "지방국립대 병원은 수도권과 달리 환자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많은 교수가 자신이 떠나면 지역에 있는 환자들이 겪을 고충을 알기 때문에 업무를 조율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남대병원 교수는 "진짜 의료 대란은 의정 갈등 1년을 묵묵히 버틴 전임의들의 재계약과 의대 개강이 맞물린 3월에 올 가능성이 크다"며 "병원이 인력 보충에 나선다고 해도 신규로 전문의를 딴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인력 풀 자체가 없다"고 한숨 쉬었다.

 전공의 이탈 이후 수요가 급증한 전문의들 몸값이 치솟는 것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대전·충남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일부 교수님들이 '교수 그만할 테니 계약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아 병원을 나가신 분들도 있고, 남아있는 분들은 대학교수로서 자긍심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부재는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으로도 이어졌다.

 강원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C씨는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간호사들이 소리 없이 해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전 지역 대학병원에서 3년간 일하다 지난해 10월 퇴사한 간호사 D(29)씨는 "3교대 8시간 근무를 초과해서 일하는 경우가 잦다"며 "근무 중 마음 놓고 식사하거나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경우도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 "올해 안 의정 갈등 해결돼야"…정부·전공의 양측 양보 의견도

 병원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올해는 꼭 의정 갈등이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의대 정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내년에 3배수의 학생들을 한 학년에 한꺼번에 받아야 한다면 정말 큰일 난다"며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이 병원 하은진 교수는 "졸속 합의가 되면 결국 또다시 이런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환자 중심이면서 공급자 역시 행복할 수 있는 의료를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우리 모두 갖고 있다면 그 목표 안에서 약간의 양보는 서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사들도 전공의들의 복귀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간호사 E씨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이 네 가지가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한 의료 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나 의사나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대전 대학병원 간호사 F(27)씨는 "병원 경영난 악화로 신규 채용 소식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간호사들 상당수가 휴직도 아닌 아예 퇴사를 고심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전공의 복귀가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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