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1년] ⑤ "밀어붙인 정부·대안 안낸 의료계…이젠 타협할 때"

의료계 안팎 전문가들 "강압적 정책 추진"·"의사들 기득권 지키기"
"의료 현실 냉정하게 보고 타협해야"…"의료체계 체질 바꾸기 필요"

  의료계 안팎의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과 의료계의 대안 제시 없는 반대, 이로 인한 소통 부재 등을 의정 갈등 장기화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구체적인 진단과 해법에는 온도차가 있지만 다수의 전문가가 전공의, 의대생 복귀와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통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동시에 이번 의정 갈등을 통해 드러난 의료체계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도 늦춰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 "정부, 대규모 증원 일방 추진"…"의료계, 대안 없이 협상 거부"

 그는 "인구구조가 변화하는 상황을 고려해서 의약분업 당시 줄어든 의대 정원 350명을 우선 늘리고 시간을 갖고 추가로 논의하자고 정부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이후 정부가 돌연 2천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해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학 교육 여건을 만들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2천명 증원을 밀어붙이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소아신경외과 전공의인 왕 명예교수는 특히 "필수의료를 하려던 사람들의 의욕이 꺾였다"며 "필수의료는 소득도 적고 의료사고 위험도 크지만 사회적 인정과 보람으로 선택하는 것인데 의사를 이기적인 집단이라며 '악마화'하는 바람에 후배들이 의욕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정경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도 "젊은 의사들은 정부가 의료계와 협의를 통해 정원을 정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강압적으로 정책을 끌고 간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2천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갈등을 키웠다는 분석을 내놨다.

 보건행정학자 출신으로 공공병원인 영월의료원을 이끄는 서영준 원장은 "의사 구인난에 시달리는 공공병원장들은 대부분 의대 증원에 찬성"이라며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일각의 주장은 "억지 소리"라고 비판했다.

 서 원장은 그러면서도 "증원 규모가 너무 컸고 이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의사 사회와 협의하지 않아 갈등을 촉발했다"고 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도 "의대 증원이 필요한 것은 기정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규모에 있어서 2천명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나온 것은 맞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그러나 "의사단체가 반대할 수는 있지만 전공의 집단사직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의사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증원 자체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인 남은경 사회정책국장은 "정말 의대 증원이 필요 없다면 증원 없이 필수·지역의료에 의사를 확충할 방안을 의사들이 내야 한다"며 "합리적인 방안 제시 없이 '증원을 철회하면 다시 논의하겠다'고 하니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경원 센터장은 "선배 의사들이 이번 사태에서 일치된 좋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젊은 의사들과 학생들이 내몰렸다"고 의료계의 대응도 지혜롭지 못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그는 "의료계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의견과 협상 카드를 내야 했지만 기성 의사들은 뜻을 모으지 못했고 젊은 의사들은 돌아서면서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 "의정, 협상 나서야…전공의·의대생 돌아오길"

 전문가들은 출구가 안 보이는 현 상황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가 취해야할 태도를 놓고는 의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년 의대 증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린다.

 의료계 원료인 왕 전 원장은 "100%는 아니더라도 전공의와 학생들이 최소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안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며 "내년 의대 정원은 0명이어야 한다. 정원이 최대 4배까지 늘어난 비상식적 상황에서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내년에는 학생을 뽑지 않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대 증원으로 인한 혼란은 길게는 4∼5년까지도 가겠지만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앞으로 증원은 불가능하다"며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단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정경원 센터장은 "상대를 설득해 한뜻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협상을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의료개혁 같은 거창한 얘기 말고 의료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할 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희선 위원장은 "2월 안에 대화 기구를 띄우고 양측이 양보해 올해는 작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왕 전 원장은 현장을 떠난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미안함을 전하며 "의정이 제대로 협상해서 전공의와 의대생을 복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정부 정책이 옳거나 동의해서가 아니라 저울질했을 때 돌아오는 게 본인 인생에 더 낫다면 동료집단에 욕을 먹고 왕따당하더라고 복귀해야 한다"며 스스로 복귀 여부를 판단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증원과는 별개로 의정 갈등 사태에서 두드러진 의료체계나 의대 교육 취약점,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의료체계 체질 개선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의료 위기를 몸소 겪고 있는 서영준 원장은 "유럽의 복지 국가에서는 국가가 의대 교육을 책임지는 대신 의사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이 굉장히 강하고 지역에 밀착돼 있다.

 당장 시스템을 완전히 바꿀 수 없다면 공공의대를 만들어 공공병원에서 일할 의사를 별도로 양성해 의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대학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만들고 동네병원에서 주치의 중심의 1차의료를 강화해 입원 중심의 진료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에 참여 중인 남은경 국장은 "의정 갈등이 의대 증원으로 촉발됐지만 이를 통해 30년간 손대지 못한 의료개혁 과제가 일시에 쏟아져나와 진행되고 있다.

 결국 가야할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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