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말려도 어쩔 수 없어요"…청소년, 고카페인 음료 건강에 빨간불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학원가.

 기말고사 기간을 맞아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 또는 영어단어를 중얼중얼 외우며 걸어가는 학생들의 손에 빠지지 않고 들린 게 있었으니, 바로 커피와 에너지 음료였다.

 청소년의 주 3회 이상 고카페인 음료 섭취율이 해마다 증가하며 심신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병욱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일 "청소년의 뇌는 성인의 뇌와 달리 여러 가지 뇌 신경전달물질 회로의 수용체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라며 "카페인을 고용량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경우 카페인 관련 뇌 신경회로가 과활성화돼 카페인 중독을 넘어 다른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다들 마시니까"…학부모·교사 만류도 소용없어

 목동 학원가에서 만난 중학생 황준우(13)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에너지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너무 많이 마셔서 잠을 못 잤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말리기도 하지만 몰래 마실 수밖에 없다"며 "밤에 공부하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말했다.

 최은서(16) 양도 "시험 기간이면 하루에 커피 1∼2잔을 기본적으로 마신다"며 "마시면 피곤하지 않아서 좋다. 다들 마시니까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은 카페인을 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칼슘 섭취를 방해해 먹으면 키 안 큰다'는 어른들의 경고도 소용없다.

 안시현(15) 군은 "선생님이 말려도 학생들이 계속 마시니까 이제는 포기하신 것 같다"고 했다.

 이지왕(19) 군도 "반 친구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에너지 음료나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카페인 장벽이 낮아진 데에는 저렴한 제품군 확대, 카페 점포 증가 등으로 접근성이 좋아진 영향이 크다.

 실제로 학원이 밀집한 목5동 450m×150m 블록 안에는 약 20개의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가형 브랜드부터 중고급형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편의점과 카페에서 판매하는 커피·에너지 음료는 대부분 1천∼4천원대였다.

 일주일에 5만원씩 용돈을 받는다는 황군은 "에너지 음료는 싸서 가격에 부담을 느낀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학부모 이모 씨는 "중3 딸 아이가 기말고사 기간에 바닐라라테를 계속 사먹어서 안된다고 했는데도 '졸려서 어쩔수 없다'고 한다"며 "이미 카페인 맛에 길들여진 것 같은데 어떻게 끊게 해야 할지 너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대치동 학원가에 가면 어린 학생들이 다들 커피를 들고 다닌다"며 "청소년의 카페인 중독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 대용량 커피 한잔으로 일일 카페인 권장량 초과

 고카페인 음료는 커피를 비롯해 커피음료, 에너지 음료 등을 말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중1∼고3 5만4천6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23.5%가 주 3회 이상 고카페인 음료를 마신다고 답했다.

 이는 2015년 3.3%, 2017년 8%, 2019년 12.2%에서 껑충 뛰어오른 수치다.

 2022년 이전에는 커피·커피음료를 제외한 에너지 음료 섭취 실태만 조사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청소년의 고카페인 섭취율 증가세가 가파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커피에 카페인이 다량 함유돼있고, 아이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는 만큼 실제 카페인 섭취 실태보다 저평가될 수 있어 조사 범위를 확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저가형 카페에서 판매하는 대용량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청소년 하루 카페인 권장량 이상의 카페인을 섭취하게 된다.

 한 커피 브랜드 대용량 커피 한잔(946㎖)에 들어있는 카페인 함유량은 290.8㎎으로, 청소년 하루 카페인 권장량(몸무게 60㎏ 청소년 기준 150㎎)을 훨씬 웃돈다.

 커피우유도 얕봐선 안 된다.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500㎖ 용량의 커피우유에는 240㎎의 카페인이 함유돼있다.

 유 교수는 "최근 편의점, 카페 등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청소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에너지 음료 광고를 쉽게 접하면서 카페인 음료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식약처, '고카페인 주의' 표시 의무 고체식품에 확대키로

 최근에는 커피 대신 '과라나'라는 열대과일이 함유된 다양한 카페인 가공식품도 가세했다.

 과라나는 브라질, 파라과이의 아마존 밀림 지대 등에서 자라는 열매로 씨앗에 카페인 성분이 들어있다.

 과라나가 함유된 고카페인 젤리, 캔디, 츄잉검 등은 '수험생용', '졸음을 깨워주는', '집중력 향상' 등 수식어가 붙은 채 판매되고 있다. 해당 젤리 제품의 카페인 함량은 개당 75㎎∼100㎎이다.

 한 판매처는 '커피를 마실 경우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지만 젤리는 그렇지 않아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홍보했고, 또 다른 판매처는 '과라나에 함유된 식물성 카페인이 커피에 함유된 합성 카페인보다 중독 위험이 낮다'고 주장했다.

 강재헌 성균관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젤리와 같은 가공식품으로 카페인을 먹게 되면 섭취량을 계산하기 어렵고, 보다 많이 먹게 되는 만큼 더 조심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경우 가정의학과 전문의도 "일일 카페인 섭취량을 계산하고 조절하여 섭취하기 어려운 경우 카페인 과다 섭취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과다 섭취로 인한 불안, 초조, 수면 부족 등은 오히려 집중력이나 판단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한편으로는 카페인 의존증을 일으켜 카페인을 중단하면 피로감, 우울감, 졸림, 두통 등의 금단증상이 생겨 또다시 카페인을 찾아야 하고 마치 카페인이 피로감, 집중력 감소 개선 등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늘평안정신건강의학과의원 최병하 원장은 "일상에서 불안을 유발하는 3대 물질로 커피, 술, 담배(니코틴)를 꼽는다. 그런데 술, 담배와 달리 커피에 대해서는 제재나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소년의 성장을 저해하는, 카페인 중독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전반적인 캠페인이 진행돼야 한다"며 "1일 카페인 섭취 권장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액체식품에만 적용돼온 고카페인 주의 표시 의무를 내년부터 과라나가 함유된 고체 식품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라 현재 학교 내 매점에서 고카페인 함유 식품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전국 주요 편의점과 스터디카페 결제화면·키오스크에 홍보 포스터를 송출하는 등 청소년들의 카페인 섭취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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