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시경 주도권 갈등…"환자는 어디에 있나"

내시경학회 주도에 대장항문학회 등 반발…"내시경검사, 특정 직역 전유물 아냐"

  우리나라는 현재 만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국가 대장암 검진을 무료로 시행하고 있다.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대변에 혈액이 섞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분변잠혈검사를 하고, 양성이 나오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장암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분변잠혈검사 대신 대장내시경을 국가검진의 기본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대장암은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장내시경은 효과가 크면서도 위해성이 비교적 작다는 이유에서다.

 국립암센터는 이런 내용을 담은 대장암 검진 개정안 초안을 마련해 의견을 수렴 중이다. 향후 검진 주기와 상한 연령 등이 확정되면, 국가 차원의 무료 대장내시경 검진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의 불씨는 정부가 최근 개정한 5주기 검진기관 평가 지침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외과·가정의학과 전문의의 대장내시경 인증 자격은 인정했지만, 정작 연수 교육 평점은 내시경학회(소화기내과) 교육만 인정하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자격은 줬지만, 교육은 맡기지 않은 셈이다.

 연수 교육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내시경 의사는 자격을 따더라도 주기적으로 교육을 이수하고 평가를 통과해야 시술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니 교육 권한이 곧 검사 주도권과 직결된다.

 현재 내시경 검사의 주도권을 쥔 건 소화기내시경학회다.

 이 학회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내시경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술"이라며 "수천 건의 경험과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한 소화기내시경 세부전문의만이 환자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소화기내시경학회는 위내시경 1천례, 대장내시경 300례 이상을 해야만 세부전문의 자격을 부여하고, 5년마다 갱신 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과 과정을 갖춘 상태에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해야만 내시경 중 생길 수 있는 천공이나 출혈 등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만큼 내시경학회가 내시경 검사의 주도권을 갖는 건 당연하다는 개 학회의 주장이다.

 실제로 다수의 논문을 보면 국내 내시경 전문의의 대장내시경 삽입 성공률과 용종 발견율은 국제 기준을 충족하거나 능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반면 대한대장항문학회를 비롯한 외과계는 "대장내시경은 단순한 검사 기술이 아니라 수술까지 이어지는 연속선상의 술기"라며 내과 중심의 독점적 구조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 헌법소원을 낸 것도 이런 이유다.

 이들은 특히 내시경 중 발생할 수 있는 천공·대량 출혈 같은 응급 상황에서 즉각적인 수술 대응이 가능한 것은 외과 전문의뿐이라고 강조한다. 환자 안전 측면에서는 외과 의사의 내시경이 오히려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외과의가 시술했을 때 합병증 대응이 더 빨랐고, 출혈량과 사망률이 낮았다는 데이터도 제시됐다.

 여기에 최근 가정의학과의사회도 논란에 가세했다.

 지금까지 일차의료 현장에서 내시경 검진에 기여해 온 만큼 '일차의료 소화기내시경학회'(가칭)를 창립해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방침이다.

 대장내시경은 장 정결의 번거로움과 시술의 불편함 때문에 기피되는 검사지만, 대장암 예방과 조기 발견에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회가 저마다 내세우는 논리는 각자의 전문 영역을 방어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어 갈등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작 내시경 검사가 가져야 할 가장 큰 가치인 '환자'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가 됐다. 환자 입장에서는 '누가 검사하느냐'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질 높은 내시경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대장내시경은 더 이상 특정 직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한 공적 자산이다. 환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내과와 외과가 협력해야 한다."

 결국 해법은 단순하다. '누가 더 잘하느냐'의 경쟁이 아니라, '함께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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