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AI 이미지]](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939/art_17587508857962_81dde9.jpg?iqs=0.6262797968828159)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설탕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조선 후기 음식 문헌인 '규합총서'와 '음식디미방'에는 과일화채나 후식에 현재의 설탕인 '사탕'(砂糖)을 넣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설탕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값비싼 수입품으로, 궁중 연회나 상류층 가정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근대사회에 접어들어서도 설탕의 이런 가치는 이어졌다. 한때 설탕은 집들이 선물의 단골 품목이었고, 아이들에게 사탕 한 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도로 소중했다.
그러나 지금 설탕은 더 이상 귀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쓰이는 설탕은 비만·당뇨·심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여학생의 첨가당 초과 섭취 비율은 38%에 달했으며, 1∼2세 유아의 초과 섭취 비율도 2022년 11.2%에서 2023년 16.2%로 5%포인트(p)나 증가했다.
이는 비만, 당뇨병, 심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꼽히는 설탕이 어떻게 '귀한 선물'에서 '애물단지'가 됐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WHO는 하루 적정 첨가당 섭취량을 총열량의 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식품 영양표시에는 '첨가당'이 별도로 표기되지 않아 소비자가 실제 섭취량을 정확히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설탕 사용을 막고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청량음료 등에 '설탕과다사용세'(이하 설탕세)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전 세계 120개국에서 설탕이 첨가된 음료나 가공식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제 설탕세를 도입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는 최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설탕세를 단순한 조세가 아닌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사회적 책임세로 규정했다.
윤 교수는 "영국의 경우 2018년 청량음료에 설탕세를 도입한 이후 아동 비만율 감소와 함께 음료업계가 자발적으로 당 저감 제품을 출시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면서 "이제는 우리도 설탕세를 도입해 과도한 가당음료 소비가 비만과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부르고, 의료비 지출과 건강재정을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설탕세가 국민 건강에 만능이 아니라는 반론은 넘어야 할 산이다.
첫째는 대체 소비 문제다. 설탕세로 설탕 음료 소비가 줄어들더라도 다른 인공 감미료가 들어간 제품으로 수요가 이동할 수 있다. 인공 감미료의 장기적 안전성은 아직 논란이 많아 새로운 건강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둘째는 역진세 논란이다. 저소득층일수록 가격 변화에 민감하고 설탕 음료 소비 비중이 높아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저소득층이 더 민감하게 소비를 줄이므로 오히려 건강 개선 효과가 크다는 분석도 있지만,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세수의 일부를 저소득층 건강 증진 프로그램에 환원하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
셋째는 재원 사용의 투명성이다. 담뱃세·주류세처럼 목적 외 사용이 반복된다면 국민 불신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설탕세 구상 단계에서부터 청소년 급식 개선, 영양 교육, 지역사회 건강센터 지원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에만 쓰일 수 있도록 하고, 그 명세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설탕세 도입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에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산업계 반발과 물가 상승 우려, 저소득층 부담 논란 등으로 무산됐다.
무엇보다 국민 설득 부족, 정책 효과에 대한 근거 부족이 뼈아픈 약점이었다. 지난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설탕세 도입 여부는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가 아니라 국민적 신뢰를 얼마나 얻느냐에 달려 있다. 재원이 건강 증진에 제대로 쓰이고,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는 장치, 대체 소비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될 때 비로소 설탕세는 '불신 세금'이 아닌 '든든한 건강 세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