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명태, 겨울바다의 팔색조

 겨울 바닷바람이 매서워질수록 우리 밥상에는 유독 자주 오르는 생선이 있다. 바로 명태다. 생태로 끓인 맑은국, 얼린 동태로 푹 끓인 찌개, 눈과 바람에 말린 황탯국, 술꾼들의 벗 노가리까지. 명태는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한국인의 삶을 떠받쳐 온 '백성의 물고기'다. 화려하지도, 기름지지도 않으며 회로 먹어 감탄을 자아내는 생선도 아니다. 그러나 명태는 비우고, 말리고,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사람을 살리는 생선이 된다. 여기에 명태가 품은 우리 민족의 양생 철학이 담겨 있다.

 명태는 고단백·저지방 식품이다. 단백질은 근육과 면역, 회복의 재료이며 명태 단백질은 흡수율이 높다. 성장기 청소년, 회복기 환자, 노년층 모두에게 적합한 이유다. 여기에 DHA와 EPA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은 뇌세포의 재료가 되어 기억력과 집중력을 돕고 혈액을 맑게 해 심혈관 건강을 지켜준다. 비타민 B12는 신경을 보호하고 빈혈을 막으며, 비타민 D는 뼈를 튼튼하게 하고, 셀레늄은 항산화 작용으로 면역력을 높인다.

 황태·북어·먹태로 변하는 과정은 그저 보존 기술의 특이점만이 아니다. 얼고 녹고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견디는 동안 명태의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그 결과 말린 명태는 생태보다 맛은 깊어지고 소화는 쉬워지며 양생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는 고난을 지나며 비워낼수록 깊어지는 사람의 삶과 닮았다. 도교에서는 이를 연단(煉丹)이라 했다. 황태는 자연이 만들어낸 연단의 결과물이다.

 명태는 버릴 것이 없다. 살과 뼈, 껍질과 알, 창자까지 모두 쓰인다. 알은 명란젓이 되고, 창자는 창난젓이 되며, 껍질은 튀각이 된다. 이는 자연을 끝까지 쓰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한민족의 생활 철학을 보여준다. 궁핍했던 시대, 명태는 생존의 기술이었다. '노가리 깐다'는 말, '밥도둑'이라는 표현, 가곡 '명태'까지. 명태는 음식이면서 언어이고, 문화이며, 기억이다.

 명태는 맛으로 최고가 아니다. 그러나 형태를 바꾸며 시대에 적응해 온 생선이다. 생태, 동태, 황태, 코다리, 노가리로 변신하며 사계절의 밥상을 책임졌다. 국물 문화와 건어물, 젓갈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 명태는 가장 한국적인 생선이 되었다. 이웃 일본에서는 살코기보다 명란젓이 더 사랑받는다. 명태의 가치는 국경을 넘어 확장됐다.

 도교 양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과하지 않음이다. 명태는 그 자체로 이 가르침을 전한다. 기름지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오래 곁에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 몸을 급하게 바꾸지 않고 서서히 회복시키는 음식이다. 명태는 약이라기보다 생활 속의 스승이다. 우리가 명탯국 한 그릇을 먹는다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조상들이 자연을 대하던 태도와 몸을 돌보던 지혜, 비우며 살아가던 철학을 함께 먹는 일이다. '서두르지 말고, 비워내고, 천천히 깊어지라'는 양생의 가르침을 품고 있다.

 손자병법 구변(九變)은 전쟁의 기술이 아니라 삶을 살리는 변화의 철학이다. 손자는 장수는 아홉 가지 경우에 얽매이지 말고 형세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했다. 구변이란 고정된 법칙을 버리고 상황과 시기, 사람과 땅의 기운에 따라 유연하게 달라질 줄 아는 지혜다. 이는 전쟁뿐 아니라 밥상과 몸, 병을 다스리는 양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겨울 바다에서 이 구변의 정신을 가장 잘 품은 생선이 바로 명태다. 명태는 한 모습에 머무르지 않는다. 생태, 동태, 북어, 황태, 코다리, 먹태로 끊임없이 변하며 인간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그 자체가 구변의 실물 교과서다.

 명태는 차가운 북방의 물에서 자라되 성질은 지나치게 차갑지 않다. 양생학에서는 담백하면서도 기혈을 해치지 않는 생선으로 본다. 동의보감의 원리에 비추어 보면 비위(脾胃)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간과 신을 돕는 식재다. 과하지 않음이 곧 덕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굽으면 온전해지고,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다. 명태는 스스로를 비워 수분을 빼고 바람과 햇볕에 몸을 맡겨 황태가 된다. 그 비움 속에서 오히려 깊은 맛과 기운을 얻는다. 이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요, 손자의 구변이다.

 명태탕은 구변의 시작이다. 날것의 명태를 무로 맑게 끓인 탕은 형세를 관망하는 장수의 눈과 같다. 과한 양념을 쓰지 않는 명태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닮았다. 명태의 흰 살은 폐를 맑게 하고, 무는 담을 삭이며, 국물은 겨울에 굳은 기혈을 부드럽게 푼다. 속을 데우되 열을 쌓지 않고, 기운을 보하되 체하지 않게 하는 탕이다. 이는 구변 중 '정(正)을 지키는 변화'로, 몸이 허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할 음식이다.

 명태를 불에 굽는 것은 변화의 강도를 높이는 일이다. 손자병법에서 불은 강력한 수단이지만 잘못 쓰면 스스로를 태운다. 명태구이는 센 불이 아니라 은근한 불이 중요하다. 겉은 바삭하되 속은 마르지 않아야 한다. 이는 양기(陽氣)를 깨우되 진액을 보존하는 조리다. 기름을 많이 쓰지 않은 명태구이는 비위가 약한 노인과 병후 회복기에 좋다. 겨울의 한기를 몰아내되 자극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이 불을 아는 장수의 구변이다.

 찜은 싸우지 않는 조리다. 물과 김으로 익혀 재료를 항복시키지 않고 설득한다. 명태찜은 간과 신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혈행을 돕는다. 채소와 함께 찌면 음양의 균형이 맞아 노자의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준다. 혈압이 걱정되는 이, 화가 많은 이에게 명태찜은 약이 된다. 이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의 미학, 구변 중 '물의 변화'다.

 전은 기름을 입히는 조리로, 명태의 담백함에 인간의 지혜를 더한 방식이다. 명태전은 평소에는 과하지 않게, 기운이 떨어졌을 때만 선택해야 할 응변의 음식이다. 손자병법이 말하는 '싸워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여기에 있다. 겨울 끝자락, 명태전에 부추나 쑥갓을 곁들이면 간의 순환을 돕고 혈을 따뜻하게 한다. 이는 구변 중 '시기를 읽는 변화'다.

 젓갈은 기다림의 음식이다. 소금과 시간이 명태를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든다. 명태젓은 소량으로 먹을 때 약이 된다. 발효는 신장의 정(精)을 자극하고 입맛을 깨워 비위를 움직인다. 이는 손자가 말한 장기전의 지혜이자, 노자가 말한 무위 속의 작위다.

 명태는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한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 그러나 본성은 버리지 않는다." 구변은 변덕이 아니다. 근본을 지키며 달라지는 것, 그것이 손자의 지혜이며 양생의 핵심이다. 몸도 마찬가지다. 계절과 나이, 체질과 기운, 질병에 따라 먹는 법은 달라져야 한다. 명태는 그 길을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속삭인다.

 한겨울 추위 속에 명태 한 토막을 앞에 두고 스스로 묻자. 지금 내 몸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그 질문에 답할 줄 아는 사람, 그가 바로 저속노화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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