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허망한 죽음 언제까지…"예방시스템 작동 점검해야"

 "도대체 언제까지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보며 속수무책이어야 하나요?"

 과거 한 고등학생의 자살 사건 이후 보건소 상담실을 찾은 학부모가 울먹이며 남긴 말이다.

 정부는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청소년 자살을 줄이겠다며 예방시스템 강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부산에서 또다시 고등학생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정부의 이런 약속이 무색하게 됐다.

 이제 아이를 잃은 유가족의 고통과 분노는 점점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걱정하면서도, 태어난 아이들이 스스로 생을 접는 비극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 20년째 OECD 자살률 1위, 10·20대 사망원인 1위 '불명예'

 우리나라는 2003년 이후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연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2천906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35명이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이 중에서도 10대와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여전히 '자살'이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스스로 생을 마감한 초중고생은 2016년 108명에서 2023년 214명(고등학생 106명, 중학생 93명, 초등학생 15명)으로 7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학생 10만명당 자살자 수도 2015년 1.53명에서 4.11명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AI 기반 자살위험 예측 시스템 등의 대응 확대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학교 내 위기 감지와 외부 전문가의 개입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로서는 외부 전문가가 학교 내 학생들의 위기 상황에 구조적으로 개입할 권한도, 시스템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학생들 대부분은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이 스스로 정신과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도, 현실은 여전히 위기 청소년에게 "정신과를 가보라"는 형식적인 권고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예방은 '위기 학생 선별과 사전 개입'…최선책 찾아야

 현재 학생 자살예방시스템은 교육부가 학교 내 상담실로 운영 중인 '위(Wee) 클래스'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이 시기별 정서행동 특성 검사를 거친 후, 또는 자발적으로 전문상담교사를 찾아가 비밀이 보장된 심리 상담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위기 상황의 아이들을 가려내는 효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내 1만2천여개 초중고 중 약 60%에만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되고 담임 교사가 상담을 겸직하는 등의 취약한 상담 인프라, 제한된 전문성, 낮은 접근성, 미비한 연계망 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또 아이들이 심리적 위기 상황인데도 자가 평가의 특성상 검사나 판별 결과가 '음성'(문제없음)으로 잘못 나오는 경우가 많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자살예방협회가 공개한 한국 청소년 심리부검 자료(2015년 8월∼2021년 7월)를 보면 많은 청소년이 사망 전까지 학교생활에 만족감을 보였고, 학교 내에서 뚜렷한 문제행동도 관찰되지 않았다.

 또 심리부검 당시 부모들의 진술에서도 약 80%가 사망 1년 전 가족들에게 자살 위험 신호를 표현했으나, 실제 사망 직전에는 그러한 신호를 인지하거나 해석하는 게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 위기 상태의 학생으로 선별돼도 부모가 전문가와의 상담이나 치료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 아이의 정신과 치료를 권유한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신고한 부모도 있었다.

 ◇ "학생 전수 심리평가 해야" vs "고위험군 실질 도움이 더 중요"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청소년 자살 예방 해법은 조금씩 다르다.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 홍승봉 회장(성균관의대 신경과 명예교수)은 20년 동안 자살 예방에 실패한 자살예방대책위원들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며 정부와 전문가 단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심리적 위기 상황에 봉착한 학생들을 조기에 가려내기 위해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평가 척도(PHQ-9)를 활용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주기적으로 학생 전수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하자는 것이다.

 홍 회장은 "PHQ-9은 우울 정도를 체크하는 도구로 5분도 걸리지 않고, 고위험군을 간편하게 선별할 수 있다"면서 "전국 학생들에게 심리평가 앱을 배포하고 앱이 자동으로 위험군을 판별하면 이 결과가 심리상담 교사에게 전송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들이 자기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면서 마음을 돌아볼 수 있고, 교사는 조기에 위기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무엇보다 PHQ-9이 성인용이고, 신뢰성을 확보하기에는 문항 수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살예방협회 이해우 사무총장은 "심리건강에 대한 자가 리포트는 이미 학생 정서행동 특성 검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진짜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접근성 있게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냐가 더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청소년의 자살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와 청소년을 포함한 부모들에게 게이트키퍼 교육을 비롯한 자살 예방 교육이 보다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게 협회의 판단이다.

 자살예방협회 이동우 회장은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인식하고,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주변의 친구, 교사, 부모 등 가까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새 정책보다 구조 문제 풀어야…"자살예방, 정규교육으로 편성 필요"

 일본은 청소년 자살의 증가세가 이어지자 지난 6월 초 자살예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청소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전 사회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자살률을 낮추거나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다만 더 시급한 것은 예산이나 정책보다 현장 중심의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담 전화를 하나 더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지역·의료·복지기관이 위험군을 신속히 연계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마련이 더 급선무라는 것이다.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이후의 빠른 조치가 중요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살위험군의 위험지표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

 SNS, 검색어 패턴, 학업 태도, 수면장애, 폭력 피해, 가족병력, 자살 시도 경험 등이다.

 이런 정보를 통합해 실시간 연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에 개입 권한을 가진 전문가 자문단을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명호 교수는 "학생들의 자살을 막으려면 교육청별로 전문가 자문기관을 만들어 위기의 학생들이 제때 연계된 치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에 더해 학생들의 정규교육에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존중 프로그램을 넣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죽음을 말하면 죽음을 부른다'는 낡은 통념도 이제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살을 언급하는 것조차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오히려 위험 신호를 침묵하게 만들고, 결국 예방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위기 학생의 한숨을 포착하지 못하는 교육, 신호를 감지하고도 연결하지 못하는 복지,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가 고쳐지지 않는 한 우리는 또다시 '도대체 언제까지…'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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