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연봉 뿌리치고…'에스와티니'에서 제2의 의사 인생

정년퇴임 후 지구 반대편서 후학양성 나선 박도준 서울의대 명예교수
"경제적인 것은 부수적…젊은 의사들, 보람 있는 일 해보기를"

 "학교에 전기가 나가 수업을 못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항상 밝게 인사하고, 여러 번 찾아와 모르는 것을 묻는 등 열심입니다."

 정년을 맞아 아프리카 남동부 에스와티니로 떠난 박도준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지난 5일  "열악한 상황에서도 열심인 학생들을 보며 어떻게든 좋은 의사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내분비와 대사성 질환 치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모교인 서울대 의대 교수로 일하며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원, 미 국립보건연구원(NIH) 연구원,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박 교수는 "정년이 가까워지며 다른 사립대 병원이나 2차 병원에서 일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가졌다"라며 "이곳 급여의 10배 이상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이제는 돈 버는 것보다 조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일 년에 몇 번씩 의료 봉사를 다니며 단기적인 도움만으로는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외국의 원조로 병원이 지어져도 일할 의사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현지인 의사를 키워내고, 이들이 후학을 양성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에스와티니에 와있던 선배 의사의 제안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7년 전부터 에스와티니에서 의대를 만드는 작업을 해온 박재형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를 역임하고 지난해 합류한 용태순 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에스와티니는 강원도 크기에 인구 121만여명이 사는 작은 왕국이다. 과거에는 '스와질랜드'라는 이름을 썼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천달러(약 556만원)로 아프리카에선 중위권이지만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실한 의료 시스템에 10년 전만 해도 평균 수명이 40세 안팎이었다. 인구 1만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박 교수는 "돈이 없어도 정부 병원에서 모든 진료를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병원에 가보면 약이나 의료용품이 없어 맹장염 같은 간단한 수술조차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을 받으려면 환자가 모든 약이나 수술에 필요한 의료용품을 직접 사 와야 한다. 가난하다 보니 그럴 수 없는 환자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병에 걸리면 병원이 오지 않고 포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가 재직 중인 에스와티니 기독대학은 이처럼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설립됐다. 정교수는 박 교수를 포함해 한국인 4명. 학생은 1학년과 2학년을 합해 23명이다.   그는 "학생들이 교수진이 되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스스로 학교가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고 철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에스와티니 기독의대의 상황도 녹록지는 않다.

 박 교수는 "나라 전체에 의사가 약 300명인데 100명 정도는 이제 막 의사가 된 사람들"이라며 "신입생이 더 들어오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목도 많아지는 데 교수로 모실 분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교직원 급여 등 학교 운영비도 약속과 달리 에스와티니 정부의 지원이 충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비용은 교수들이 월급에서 일정 비율을 갹출해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다른 의사들에게 자신과 같은 '도전'을 권유했다. "정년퇴임을 하고 돌이켜보니, 경제적인 것이 중요는 하지만 삶에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의사들에게도 '좀 더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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