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대신 시작한 복숭아마저"…기후변화에 애타는 농민들

변화무쌍 날씨 속 잇단 냉해·병충해 피해 …"상품성 있는 과일 수확률 급감"
전문가 "장기 전략 없이는 천도복숭아 산업 지속성 담보하기 어려워"

 "최근 3년 사이에 냉해와 병충해 피해가 특히 극심해졌습니다."

 겉면에 털이 없고 매끈한 모양새. 일반 복숭아보다 과육이 단단하며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천도계 복숭아는 경산이 국내 주산지다.

 천도계는 꾸준한 연구 등으로 십여가지에 달하는 품종이 개발됐지만, 기후변화로 재배환경은 갈수록 녹록지 않다.

 ◇ "사과 대신 재배 시작한 천도복숭아마저"…농민들 기후변화에 '답답'

 최씨는 "천도복숭아 농사를 5천~6천평 짓다가 지금은 2천평만 한다. 이마저도 줄여야 할 판"이라며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겨울이 따뜻해지다 보니 복숭아꽃이 예년보다 빨리 피고 이 탓에 봄눈이나 서리 등 냉해 피해가 더 늘었다. 또 가을까지 폭염과 폭우가 잦다 보니 병충해는 물론 낙과와 당도 저하, 착색 불량 등 피해도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천도(天桃)는 '하늘의 복숭아'라는 뜻.

 중국 고전에서는 불로장생을 위한 과일이자 신선의 과일로 묘사된다.

 경산을 중심으로 영천·청도에서 주로 재배된다.

 "기온이 따뜻해져 사과 농사가 잘 안돼서 30~40년 전부터 지역에서 다들 천도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2월 초에 찾아간 경산시 용성면에서 만난 한 농부는 사과가 주력이었던 지역에서 복숭아 농사를 시작한 이유를 들려줬다.

 그는 "한때 천도복숭아가 효자였지만, 이제는 수지가 안 맞으니 다들 무얼 재배해야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농가의 답답함을 설명했다.

 금호강 유역인 경산 지역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토양이 과수와 밭작물 재배에 유리한 사질토라서 1910년대부터 사과를 주로 재배했다.

 1975년에 이르러 경산 전체농지의 80%가량이 사과밭이었으나 기후가 따뜻해지며 사과 재배지가 북상함에 따라 농가들은 복숭아로 작목을 전환했다.

 경북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1980년 363㏊이던 경산의 복숭아 재배면적은 2005년에는 1천590㏊로 크게 늘었다.

 한때 복숭아 중에서도 값이 후했던 천도계는 지난 10년간 가격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상품성·품종 등에 따라 가격 차가 크지만, 가락동 농수산물 종합도매시장의 시세표에 따르면 천도계에서도 고급 품종인 신비 복숭아의 경우 2017년 7월 3일 5㎏ 특품 한상자에 2만6천원 선에서 거래됐으나 작년 7월 23일에는 1만6천원 선에 거래됐다.

기후변화 따른 복숭아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 2090년이면 전 국토의 5.2%만 재배 가능…"냉온기 부족 탓"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 대응 농업연구소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6대 과일 재배지 변동 예측'을 지난 2022년 조사 발표했다.

 예측에 따르면 기후학적으로 국내 복숭아 재배 가능지는 2000년대부터 2030년대까지는 증가하다가 이후 급격히 감소해 2090년에 이르면 전 국토에서 5.2%만이 기후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것으로 점쳐졌다.

 실측 결과도 예측과 비슷한 양상이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복숭아 재배면적은 2005년 1만5천여㏊에서 2017년에는 2만1천여㏊까지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3년에는 2만여㏊, 2024년은 1만9천여㏊ 등 감소세로 돌아선다.

 이 같은 재배지 변화는 기후변화 탓이 크다.

 복숭아나무는 가을 낙엽 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저온을 유지해야 하는 저온요구도가 있다.

 품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근 육성된 천도복숭아의 품종은 7.2도 이하에서 최저 400~600시간을 겪어야 다음 해 정상적으로 발아·개화·결실한다.

 그러나 국내 기후대의 변화로 저온요구도의 충족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연구 결과를 보면 2020년대에는 우리 국토의 6.3%가 아열대 기후대지만 2030년대는 18.2%, 2050년대에는 55.9%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상덕 경산시 용성농협 상무는 "지역에서 복숭아 농사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면서 저온요구도를 충족하지 못해 재배지가 점점 북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강원도까지 재배지가 확대됐다"라고도 덧붙였다.

 기후변화는 병충해 피해도 키웠다.

 2대째 경산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는 50대 농부는 "예전이면 병충해가 1년에 한 차례 정도 창궐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며 지금은 두차례 정도 창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병충해 등 여러 피해를 감안하면 3년 전보다 상품성 있는 과실의 수확률이 30%나 줄었다"고 했다.

 ◇ "장기 전략 없이는 복숭아 산업 지속성 담보하기 어려워"

 천도복숭아 재배의 안정성이 위협받자 농가들은 보험 가입 확대와 재배 방식 전환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가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병건 경산시 자인농협 남산지점 대리는 갈수록 농민들의 농작물재해보험이 크게 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겨울철 기온이 높아지면서 냉해와 병충해 피해가 잦아졌다"며 "10년 전만 해도 보험 가입 농가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농가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농가들의 재배 전략도 변화하는 추세다.

 이병건 대리는 "기본적인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수익 농사와 보험 농사를 병행하는 구조로 재배면적을 조정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복숭아 전체 재배면적 가운데 보험 가입 비율은 45.3%로, 2015년에 비해 약 4배 증가했다.

 기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시설재배 전환도 거론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조준현 경산농업기술센터 과수 팀장은 "시설재배는 냉해 등 기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생산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지재배는 한 밭에서 약 15년 정도 지나야 생산성이 감소하는 반면, 시설재배는 5년 정도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김대홍 청도 복숭아연구소 연구실장 역시 "평당 시설비가 10만 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시설재배는 농가의 순소득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수확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나무 수명이 짧아지는 단점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탓에 농가들은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보조금 확대보다는 농자재·농기계 지원을 통한 농업경비 절감, 병과 처리시설 등 공동 인프라 구축,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농민들이 더 원한다"고 이 대리는 전했다.

 또 "천도복숭아 주산지임에도 불구하고 경산이 지역 특산품으로서 제대로 된 브랜드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고 덧붙였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올해 2월 발표한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과수 산업 변화와 중장기 과제'에서 과수 생육 품질 관리시스템을 통해 이상기온을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이상기상에 대응할 재배 기술 개발, 저온요구도가 낮은 품종 육성, 농산물 보험의 대상과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농가와 전문가, 각종 연구 보고서를 종합해 보면 기후변화에 따른 경산 천도복숭아 산업의 위기는 이미 현실로 다가와 있다.

 그에 따른 대응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으로 보였다.

 현장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새로운 재배 기술의 개발과 보급, 유통·홍보를 연계한 장기 전략 없이는 기후변화 속에서 경산 천도복숭아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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