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퍼포먼스까지…어린이미술관 예전같지 않더라

'어린이 그림 전시관'에 가깝던 어린이미술관에 새바람
별도 공간·조직 갖추고 정책 고민…이건용·강서경 등 현대미술가와 적극 협업
국립현대미술관 5대 과제에 '어린이미술관 강화' 포함…31일 국제심포지엄

백발의 사내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더니 손에 쥔 분필로 바닥에 선을 그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전진하는 그를 쫓아 한 어린이가 "할아버지 화이팅"을 연신 외쳤다. 퍼포먼스가 끝난 뒤 작가는 어린이 이름을 물어본 다음 '김아로가 응원했다'를 썼다.

지난 24일 원로작가 이건용(77)이 '달팽이 걸음'을 재연한 곳은 성동구 성수동의 어린이미술관인 헬로우뮤지움. 40년 전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처음 전개한 '달팽이 걸음'은 신체적 회화로 이름난 이건용의 대표작이다. 기행처럼 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개된 점이 이채롭다. 관람객 반응은 뜨겁다. 한 어린이는 이건용에게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어떡해('어떻게'의 오기) 예술이 되요(돼요)?"라고 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 어린이미술관 풍경이 달라졌다. 원래 어린이미술관은 대형 미술관에 딸린 '어린이 그림 전시관'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 수년 새 별도 공간과 조직을 갖추고 정책을 고민하는 미술관들이 많아졌다.

2007년 개관한 사립어린이미술관인 헬로우뮤지움이 그 선두에 있다. 헬로우뮤지움은 시각예술을 통한 놀이문화 확산과 동네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연간 3만여명이 찾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판교에 들어선 현대어린이책미술관도 체계적인 전시·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지난 8월 문을 연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은 성북구가 자치구 최초로 마련한 어린이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과천관을 중심으로 어린이미술관 기능 강화를 모색 중이다. 윤범모 관장이 지난 3월 발표한 개관 50주년 미술관 5대 과제 중 하나가 '어린이미술관 강화'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울관 설립으로 위축된 과천관 정체성을 시급히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31일 과천관에서 열리는 국제심포지엄도 미래 세대를 위한 미술관 교육의 여러 아이디어를 논하기 위한 장이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프랑스 퐁피두센터, 이탈리아 밀라노어린이박물관 인사들이 참여한다.

눈높이에 맞춘다는 이유로 어린이 창작물을 공유하거나 동·서양 고전 명화를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전시·교육 콘텐츠도 달라지는 양상이다.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어린이들이 공간, 예술, 공동체, 이웃, 환경 등을 생각하게 이끈다.

서울시립(SeMA)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서 열리는 '사각 생각 삼각'도 지난해 아트바젤 발루아즈 상을 받고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강서경과 함께 마련한 전시다.

작가들 반응도 좋다. 최근 헬로우뮤지움에서 퍼포먼스를 펼친 성능경 작가는 미술관에 "평생 어린이 관객을 만날 생각을 못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은 2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좋은 작품은 아이들 눈에도 좋은 작품"이라면서 "너무 폭력적이거나 전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도 좋은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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