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나쁜 것도 쓸모 있다…상상력 발달에 도움"

아이디어의 발달 과정 살펴본 신간 '생각의 역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은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영화다.

 산을 넘다 살해된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의 백미는 목격자들의 진술이다.

 재판정에서 사건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사람들의 진술이 나오는데 모두 제각각이다.

 심지어 무당의 주술을 통해 혼으로 불려 나온 죽은 사무라이의 증언조차 목격자들의 진술과 다르다. 사건은 미궁에 휩싸인다.

 영화가 말하려는 건 어쩌면 이런 거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모두 똑같이 잘못 기억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기억력이란 그리 신뢰할 만한 구석이 없다.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 것만 기억하기 쉬워서다. 싸움만 해도 그렇다.

 부부싸움, 친구와의 싸움은 지난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의 과정일 뿐이다. 진실은 쉽사리 휘발되고, 싸움의 부유물인 생채기만 남는다.

 개인적 차원에서 불완전한 기억은 상처가 되기 쉽지만, 인류 집단적 차원에선 축복에 가깝다.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미국 노터데임대 석좌교수는 신간 '생각의 역사'(교유서가)에서 "나쁜 기억력이 상상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발전을 추동하는 건 '아이디어'(생각)라고 말하면서 생각의 세 가지 연료로 기억력, 상상력, 예측력을 꼽는다.

 상상력과 기억력은 성질뿐 아니라 발생하는 신체 부위도 비슷하다. 기억 활동과 상상 활동이 '일어나는' 뇌 부위는 겹친다.

 상상력과 기억력이 작동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활동은 거의 동일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빈약함, 낮은 신뢰성, 결함, 왜곡은 우리의 기억을 좀먹는다"며 하지만 "이처럼 허술하게 작동하는 기억력 덕분에 인간은 특출나게 상상적인 동물"이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 동물을 사냥하거나 포식자를 피하는 과정에서 진화했을 예측력까지 더해지면 인간의 생각은 하나의 힘, 곧 '정신'이 된다.

 "아마도 정신은 여러 뇌 기능 간의 상호작용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기억과 예측이 불꽃을 일으키며 서로 부딪혀 긁힐 때 우리에게 보이고 들리는 창조적 섬광과 마찰음이다."

 하지만 상상력, 기억력, 예측력이 빚어낸 창조는 실패로 치닫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실패를 통해 배운다.

 실패는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한 충격은 새로운 패턴과 새로운 과정을 낳아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책은 그런 실패와 성공의 역사를 담았다.

 고대인의 동종포식(식인풍습)에서 시작해 영혼, 토테미즘, 공자와 플라톤의 사상, 중세 신학,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계몽주의를 거쳐 최근의 세계화까지 인간 사고의 변천 과정을 조명한다.

 저자는 "정신은 중요하고, 아이디어는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생각의 핵심은 다양성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문화가 "압도적으로 수렴적 추세를 보인다"며 "이대로라면 우리는 조만간 전 세계에 단 하나의 문화만을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두꺼운 데다 읽기 수월한 내용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몇몇 통찰과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책에 담겨있다.

 홍정인 옮김. 8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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