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보물' 같은 어종, 숭어

 물고기 중 약재로도 쓰이는 생선이 있다. 숭어다.

 숭어는 성장 단계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작은 것은 모치, 참동어, 손톱 배기, 4년 정도 자란 중간 크기의 숭어는 댕가리, 딩기리, 무구력, 그리고 7년 이상 자라야 비로소 진짜 '숭어'로 불린다.   이외에도 그 모양이 곧고 빼어나 여러 생선 중에서도 맛이 뛰어나 수어(秀魚), 수어(首魚)로도 불렸다. 우리 선조들은 숭어의 맛뿐 아니라 효능도 높게 평가했다. '향약집성방'에 숭어는 '오장을 고르게 하고,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百藥)에 어울린다'고 기록돼 있다.

 숭어는 살도 맛있지만, 진정한 보물은 숭어알로 만드는 '어란'(魚卵)이라 할 수 있다. 어란은 숭어의 알집을 꺼내 소금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간장에 절이며 그늘에서 말려 만드는 정성 가득한 식재료다. 맛은 고소하고 희소성과 영양성, 손이 많이 가는 제작 방식 때문에 가격도 매우 높다.

 이 어란은 숭어와 함께 임금께 진상됐으며, 오늘날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최고급 진미로 인정받는다. 일본에서는 '카라스미'(カラスミ)라 불리며, 천하 3대 진미 중 하나로 꼽힌다. 대만에서는 '우위쯔'(烏魚子)라 해 연말 선물이나 고급 요리로 많이 쓰인다. 이탈리아에서는 '보타르가'(Bottarga)라 하며 갈아서 파스타나 피자에 뿌려 먹는다. 우리나라 어란은 맑은 바다와 정성, 전통의 발효 문화가 더해진 프리미엄 건강식품이다.

 햇살 아래 황금처럼 반짝이는 어란은 '난호어묵지'에서 "빛깔은 호박 같고, 맛은 진미 중의 진미"라고 평가했다.

 요즘이 바로 숭어철 막바지다. 숭어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봄철, 보리가 싹을 틔우는 4∼5월에 많이 잡힌다.

  겨울 동안 산란을 마친 숭어가 다시 살을 찌우는 시기로, 지금이 가장 맛있고 영양도 뛰어난 시기다.

 숭어는 전량 자연산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반면 비슷한 어종인 가숭어는 3∼6월에 산란하고 양식도 하기 때문에 겨울이 제철이다.

 숭어는 우리나라에서 방언과 속담이 가장 많은 어종이다. 봄철이면 숭어 떼가 연안으로 몰려오고, 어민들은 분주히 그물질하며, 낚시꾼들은 숭어 떼 사이로 갈고리낚시(홀치기)를 던져 숭어잡이에 나선다.

 부산 가덕도에서는 매년 봄 숭어 축제가 열리고, 전통 어로 방식인 '육수장망어로법'도 시연된다.

숭어의 영양과 효능을 찾아보면 숭어는 예로부터 약재로도 쓰였다. 현대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식재료다.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해 빈혈 예방에 효과적이다. 특히 DHA와 EPA를 하루 권장량의 2배 이상 함유하고 있어 심장병, 동맥경화, 뇌졸중, 치매 등 혈관 건강에 좋다. 또한 비타 A, B, D, 그리고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질환 예방, 세포 재생, 칼슘 흡수 촉진에도 도움이 된다.

 약선요리에서 숭어의 성질을 찾아보면 한문으로 숭어는 '치어'라고 하며, 맛이 달고 성질은 편평하다. 주로 비(脾), 위(胃), 폐(肺)에 작용한다.

 효능은 인체의 기(氣)와 혈(血)을 보하고 비장을 튼튼히 하고 위장을 좋게 해 오장(五臟)을 고루 순조롭게 해 준다.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어혈을 풀어 통증을 줄이며 산모의 젖을 돌게 하는 효능도 있다.

 또, 약선에서는 숭어를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식약재로 활용한다. 빈혈, 체력 저하, 비위 허약으로 인한 소화불량, 설사, 성장기 아이의 영양부족, 오랜 질병 뒤 허약한 몸, 백일해, 자궁출혈, 산후 젖 부족 또는 어혈 증상 등에 숭어가 좋다고 나와 있다. 숭어는 지금이 가장 맛있는 시기이며, 몸을 보하고 기운을 살리는 훌륭한 식재료다.

 ◇ 어머니와 함께한 숭어 보양탕의 추억

 필자가 어릴 때 24절기 중 입하가 지나고 햇살이 부쩍 따스해질 무렵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말씀하셨다.

 "아들아, 이맘때쯤이면 네 아버지가 기운이 떨어지시거든. 제철 숭어가 최고다. 이제 숭어가 나왔을 거야."

 어머니는 1년 24절기를 몸으로 기억하는 분이셨다. '입하가 지나면 습기가 차오르고 기운이 가라앉는다'는 옛 성현의 말을 꼭 새겨두고 사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늘 그랬듯 시장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간 어물전에는 바닷바람이 스민 듯한 생선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지만, 어머니의 눈은 언제나 숭어를 먼저 찾아냈다.

 "저 눈 봐라. 맑고 투명하지? 비늘은 반짝이고 몸통은 미끈하고 통통하니 딱 맞네."

 어머니는 그런 숭어를 열 마리쯤 사서 광주리에 담으셨다. 집에 돌아오면 마당 우물가에서 커다란 나무 도마를 깔고 숭어 손질이 시작됐다. 비늘이 해처럼 반짝였고, 어머니의 손놀림은 약재를 다루듯 정갈했다.

 어머니는 칼등으로 비늘을 벗기며 숭어 두 마리는 토막 내어 탕거리로 준비하셨다. 나머지는 소금을 쳐서 마당의 줄에 걸어 말리셨다.

 햇살이 반짝이면서 천천히 말리는 숭어는 그 자체로 여름 풍경이었다. 다음은 광에서 꺼낸 황기와 무말랭이, 대추, 마른 고추를 손질하실 차례다.

 텃밭에서는 대파 한 줄기와 쑥갓 한 줌을 뜯어와 깨끗이 다듬으셨다. 마늘은 다지고, 고춧가루와 간장, 후추도 차곡차곡 준비하셨다.

 어머니는 이어 작은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물을 부으셨다. 황기와 무말랭이, 대추를 넣고 거센 불로 30분 끓인 후 건더기를 건져내셨다.

 그 육수에 손질한 숭어와 가위로 반 자른 마른 고추, 간장을 넣고 다시 센 불로 끓이셨다. 이윽고 대파와 쑥갓, 고춧가루를 넣고, 마지막에 후추를 뿌리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뚝배기에 담긴 숭어탕이 밥상 위에 오르면, 땀을 뻘뻘 흘리며 드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당신 숭어 보양탕은 최고야."

 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알았다. 이 숭어탕은 절기와 지혜, 정성과 사랑이 한데 어우러진 어머니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24절기 중 입하가 지나고 소만이 가까워지면, 그때 그 마당, 그 냄새,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문득 생각난다.

 절기마다 알맞은 음식을 차려내셨던 어머니의 지혜와 음식 너머에 담긴 깊은 마음까지도.

 그것은 가족을 살리는 약선의 시간이었다.

 ◇ 손자병법으로 본 숭어 약선요리

 손자병법 '병세(兵勢)의 장'은 전쟁에서의 '형세'(形勢)와 '기세'(奇勢)를 다루는 장이다. 여기서 손자는 병법의 핵심을 정(正)과 기(奇), 즉 정공법과 기습전술의 유기적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투의 흐름과 승리를 좌우하는 '기세'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강조했다. 이 원리를 숭어를 활용한 약선요리에 비유해 보고자 한다.

 정(正)은 기본이고 기(奇)는 숭어의 다양한 조리법으로 풀어낼 수 있다. 손자가 말한 병은 정으로 싸우고, 기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즉, 전투는 기본 전술(정)로 진행하지만, 기발한 응용(기)으로 승부를 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正)에 해당하는 요리는 숭어회다.

 생선 본연의 맛을 살리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숭어의 신선도와 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병법에서 전면 공격과 같으며, 기본에 충실한 정면승부다.

 기(奇)에 해당하는 요리는 숭어 조림, 숭어 매운탕, 숭어구이 등이다. 각각의 재료 조합과 조리 방식으로 숭어에 새로운 맛과 효능을 부여한다. 전술적 응용이자, 예상치 못한 기습과 같다.

 이처럼 약선요리는 정(기본 효능의 원재료)에 충실하면서 기(맛과 약효를 높이는 조리법)를 통해 기세를 만든다. 한 가지 재료인 숭어로 다양하게 응용하며, 기세 있는 요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또한 손자는 '세'(勢)는 둥근 바위를 높은 산 위에 놓고 굴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힘을 통해 큰 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즉 숭어회 → 구이 → 조림 → 매운탕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마치 전장의 흐름처럼 조리의 '세'를 형성한다.

 이러한 각각의 요리는 맛과 영양의 강약을 조절하며 식탁 위에 기세를 더한다. 특히 숭어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간과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는 대표적 약선 재료다. 숭어라는 재료에 적절한 조리 흐름(형세)을 부여하면, 한 끼 식사가 아닌 '약이 되는 밥상'이 되는 것이다.

 손자는 지형을 잘 이용하면 병사의 기세가 커진다고 했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숭어는 제철(3∼5월)에 가장 맛과 효능이 뛰어나며, 이때 조리하면 식재료 본연의 기세가 절로 살아난다. 이는 '때와 장소를 아는 병법'처럼, 약선에서도 계절과 재료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병세(兵勢)의 핵심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응용을 통해 흐름과 기세를 만드는 것이다. 약선도 마찬가지다.

 숭어라는 재료 하나로 회, 조림, 구이, 매운탕 등 다양한 조리법을 첨가 재료를 통해 영양과 맛의 흐름을 만들고, 이를 통해 기력을 북돋고 질병을 예방하는 '약선의 기세'인 효능을 완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K-푸드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품은 새로운 식문화다. 숭어 요리는 조선의 궁중에서 시작된 스토리와 정성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전통이다. 제철 숭어로 만든 보양식은 이제 전 세계인이 즐기는 K-푸드의 미래 자산이 되고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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