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 누가 우리 몸의 주인인가?

 우리 몸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지구상 생명체 중 누가 주인인가 하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간이 이 세상의 영장이고 주인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세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균이 과연 건강의 적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다. 많은 사람이 세균을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인간이 세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 있을까? 절대로 못 한다. 인간의 피부에만 약 1조 마리, 소화기관에는 무려 100조∼400조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다. 인간의 세포 수보다 많은 세균을 어떻게 박멸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생명 유지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 산소다. 인간이 호흡하기에 적당한 산소의 농도, 즉 지구상의 산소 농도를 21%로 맞춰준 존재가 바로 세균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균은 온갖 생명체의 시조이자 지구상에서 수십억 년을 살아온 원주(原主) 생물이며, 지구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세균은 우리의 적이 아니고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는 소중한 생명체다.

 이외에도 세균은 우리 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비유하자면 세균은 우리 몸에서 군인과 환경미화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력이 약해지면, 환경미화원이 일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는 외적의 침입을 받고, 거리는 온통 쓰레기로 뒤덮일 것이다.

 우리 몸의 방어 기능, 즉 면역 작용을 돕고 몸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이 세균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극히 일부다.

 오히려 대다수 세균은 병과 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세균은 수많은 개체가 마치 하나처럼 움직인다는 점이다.

 공동운명체로서 모든 유전 정보를 공유한다. 새로 들어온 정보가 전체 세균 집단에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이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것이 페스트균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흑사병을 일으킨 무시무시한 균이다.

 흑사병의 유행으로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2천만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생겼다. 당시 유럽 인구가 5분의 1로 줄어들었고,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 세계 인구를 모두 삼켜버릴 듯했던 페스트균이 갑자기 활동을 멈춘 것이다. 별안간 흑사병이 진화됐기 때문이다.

 모든 페스트균이 그러기로 합의라도 한 듯이 말이다.

 이게 인류 의학사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이에 대해 많은 학자가 페스트균이 숙주 인 인간을 살려서 공존하는 방안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어떨까? 우리 몸의 주인이 나인지 몸속 세균인지 잘 모를 일이다.

 ◇ 장내세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라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도 이 장내세균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결국 우리의 식생활을 결정하는 데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건 음식물의 성분이나 체지방량이 아니고 '장내세균이 좋아하는 음식이냐 아니냐'가 돼야 한다.

 흔히들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채소나 과일 등을 꼽는다. 혹은 우리 몸의 유해산소를 무해한 물질로 바꾸는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물질을 먹으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부 장내세균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매일 장내세균이 좋아하는 채소와 과일을 다섯 가지씩 먹기를 권장하기도 했다.

 장내세균이 특히 좋아하는 폴리페놀은 우리 몸에서 다양한 작용을 하는데, 이를테면 혈당을 조절하거나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면역기능을 항진시키고 염증반응을 완화하며 노화를 느리게 하는 등 수없이 많은 기능을 한다.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물로 시금치·브로콜리·당근·올리브껍질 등 채소류와 블루베리·라즈베리·딸기 등 각종 베리류 과일, 그리고 견과류 등이 있다.

 다크초콜릿이나 커피, 녹차, 적포도주 등 기호식품에도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다.

 사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은 소화·흡수돼 혈액으로 가기 전에는 모두 이물이다. 우리 몸속에 존재하지만, 우리 것이 아닌 셈이다. 따라서 장에서 음식물을 소화·흡수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성분을 흡수하면 두드러기 같은 알레르기 증세를 일으키고 때로는 과민반응을 일으켜 우울증이나 관절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주로 장내세균의 균형이 깨져서 나타나는 것이다.

 장내세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습관을 지녀야 할까?

 우선 항생제를 장기적으로 투여했을 경우 장내세균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

 정크푸드는 되도록 피하고 장내세균이 좋아하는 채소와 과일 섭취를 늘리는 것이 좋다.

 프로바이오틱스를 따로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평소에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연구자는 집에 정원을 가꾸거나 흙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흙 속에는 우리 몸에 이로운 균이 많기 때문이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면 어린이의 장내세균 다양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운동 역시 장내세균의 건강에 아주 중요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매우 해롭다.

 특히 가만히 앉거나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습관, 그것도 간식을 먹으면서 앉아 있는 것은 장내세균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고 줄이는 것도 장내세균 균형 유지에 중요하다. 적당히 잠을 자고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결론을 정리하면 음식의 칼로리나 영양 성분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장내세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장내세균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장내세균의 분포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는 알 수가 없다.(계속)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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