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가 유전자 시퀀스(서열)의 작은 조각들을 선택적으로 반복 삭제해, 인체의 면역 반응을 회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종 코로나의 이런 염기 서열 결손(deletion)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형태와 관련된 시퀀스의 일부에서 이뤄져 변이 바이러스의 유전 형질로 굳어졌다.
염기 결손이 생긴 변이 바이러스는 이전의 중화 항체로 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진화하면 신종 코로나는 항체 중화를 피할 수 있다.
바이러스 복제 과정에서 유전자 오류를 잡아내는 '분자 교정자'(molecular proofreader)도 이런 유형의 염기 결손은 복구하지 못했다.
미국 피츠버그대 백신 연구 센터의 폴 듀프렉스 박사 연구팀은 저널 '네이처'(Natur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듀프렉스 박사는 이 센터의 소장이며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았다.
영국, 남아공 등에서 발견된 변이 신종 코로나도 이처럼 일부 조각이 결실된 시퀀스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듀프렉스 박사팀이 중화 항체에 저항하는 신종 코로나의 염기 결손을 처음 발견한 건, 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 환자의 유전자 샘플에서다.
피츠버그에 거주하던 이 환자는 감염 74일 만에 면역력이 많이 약화한 상태로 사망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대유행이 터진 이후 전세계에서 취합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염기 서열 데이터베이스를 정밀 분석했다.
이 환자의 샘플에서 드러난 염기 결손이 하나의 트렌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에 착수한 지난해 여름만 해도 신종 코로나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분석이 진행되면서 더 많은 염기 결손이 발견했고, 그런 결과가 모여서 하나의 패턴을 드러냈다.
염기 결손은 유전자 서열상의 동일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이 지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침입해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면서 스파이크 단백질의 형태 변화를 감내할 수 있는 위치였다.
논문의 제1 저자인 케빈 매카시 생물학 분자유전학 조교수는 "진화는 스스로 반복되는데 이 패턴을 보면 예측이 가능하다"라면서 "(염기 삭제가) 몇 차례 이뤄졌다면 반복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이 염기 결손을 확인한 유전자 서열 중에는 '영국발 변이'(U.K. variant/정식 명 B.1.1.7.)의 시퀀스도 들어 있다.
그때는 지난해 10월로 아직 영국발 변이가 뜨기 전이었다.
하지만 듀프렉스 박사팀은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영국발 변이의 서열 결손 패턴을 미리 확인했다.
다행스럽게 피츠버그 환자의 샘플에서 발견한 변이 코로나는 지금도 회복기 환자 혈장(convalescent plasma)의 항체로 어렵지 않게 중화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돌연변이 회피(mutational escape)가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 식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언젠가는 신종 코로나가 현재 나와 있거나 개발 중인 백신과 치료제도 회피할 수 있다는 걸 이번 연구는 보여줬다.
언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매카시 교수는 "이런 유전자 서열 결손이 (백신의) 방어 작용을 어느 정도 훼손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라면서 "하지만 언젠가는 백신을 다시 만들거나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