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소아 진료 [연합]</strong>](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727/art_17514048994657_62ad39.jpg)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소아 의료의 현실은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다.
부모가 직장과 아이의 진료 사이에서 곡예 하듯 시간을 쪼개 써도 아이가 아플 때 제때 진료를 받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78%는 아이의 진료를 위해 월 1회 이상 병원을 방문한다고 답했다.
자녀 1인당 연평균 본인 부담 의료비는 40만6천원이었다.
진료 사유는 감기나 발열 등의 '호흡기 및 이비인후과 질환'(82.4%)이 압도적이었고, 다음으로 위장염 및 결장염(29.2%), 피부질환(25.0%), 치과 관련 질환(24.5%) 등이었다.
외래 이용 시 동행자는 대개 부모(73.8%)였지만, 조부모(3.6%) 외의 다른 가족(삼촌, 이모 등)도 20.9%에 달해 아이의 돌봄 부담이 넓게 분산되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했다.
문제는 진료 접근성이었다.
아이의 진료를 위해 집을 나서 병원을 다녀오기까지 평균 1시간이 넘는 69.5분이 걸렸으며, 이중 진료 대기시간으로 평균 34.7분이 소요됐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진료까지 최장 2시간을 기다리고, 집과 병원에 오가는 데 총 3시간이 걸렸다는 응답도 있었다.
지역별 진료소요 시간은 부산이 53.4분으로 가장 짧았으며, 울산이 82분으로 가장 길었다.
진료 대기시간은 광주가 46.2분으로 가장 길었는데, 가장 짧은 부산(25.4분)에 견줘 20.8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부모의 56.2%는 진료 대기시간이 길다고 느꼈으며, 17%는 병원까지의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5명 중 1명(21.2%)은 아이가 아픈데도 외래 진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 이유로는 '병의원 예약이 어려워서'(78.3%), '직장과 병원 운영 시간 등의 이유로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여건이 맞지 않아서'(65.1%) 등을 꼽았다.
자녀 진료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지 않는다는 응답은 38.9%에 그쳤으며, 거주지역에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충분하다'고 느낀 비율도 25.6%에 불과했다.
현행 소아 의료 시스템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응답자의 81%는 소아청소년과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주말 및 야간진료 확대, 병의원 예약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각각 99.7%, 97.6%로 더 높았다.
비대면 진료 확대에도 78.2%가 찬성했다.
소아청소년과가 아닌 타 진료과를 이용하는 비율이 21%에 달하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가장 많이 선택한 대체 진료과는 이비인후과(13.2%)였고, 선택 이유는 '가까워서', '대기시간이 짧아서', '치료 결과에 만족해서' 순이었다.
접근성이 부모의 병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야간과 휴일에 소아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부모는 47.9%에 그쳤다.
또 스마트폰을 통한 비대면 진료 가능성을 아는 비율도 41.8%에 머물렀다.
부모 중 83.1%는 소아 진료 접근성이 좋아지면 자녀 돌봄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으며, 궁극적으로 출산율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도 67.0%로 높은 편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수가 인상에 대해서는 절반을 넘는 55.1%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 결과가 소아 의료체계의 구조적,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 중에서도 부모들이 예약의 어려움과 시간 부족으로 진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고 지목한 점은 공공성을 갖춘 예약시스템의 확대와 비대면 진료 활성화, 야간·주말 진료 접근성 강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세대 박명배 교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확대하고 소아응급의료센터 간 연계 체계를 구축하면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을 줄이고, 지역 기반의 적절한 소아 진료 제공을 통해 부모의 불안과 대기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구팀은 공급자 측면에서도 제도적 보완과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박 교수는 "지역 내 소아청소년과의 운영 여건이 점차 악화하면서 소아 진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소아 의료체계 전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소아 의료체계가 강화되면 자녀 돌봄 부담 완화와 저출생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 해결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