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약속 불이행, 21조 증발시켜…건강보험료 인상 초래하나

건강보험 재정, 법정 국고지원 매년 '공염불'…지속가능성 '빨간불'

 매달 월급에서 꼬박꼬박 내는 건강보험료는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사회 안전망이다.

 하지만 이 금고의 한쪽 구석이 18년째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금고를 함께 채우기로 약속한 정부가 법으로 정해진 돈을 제대로 넣지 않으면서, 그 구멍이 무려 21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 매년 반복되는 '법 따로, 현실 따로'

 30일 국회입법조사처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현행법(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에 따라 정부는 매년 국민이 낸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함께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자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하지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가 의무적으로 지원을 시작한 2007년부터 2024년까지 법이 정한 20%를 온전히 채운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기간 정부의 평균 지원율은 14.6%에 그쳤다. 정부가 법을 지켰더라면 건강보험 재정에는 지난 18년간 총 21조7천285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더 쌓여 있어야 했다.

 최근 10년(2015∼2024년) 동안의 미지급금만 해도 18조5천338억원에 달해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왜 법으로 정해진 책임을 다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재정 당국은 해당 국고 지원 규정을 영구적인 의무가 아닌 한시적인 지원책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법 자체의 구조적인 모순도 문제다. 정부 지원금은 일반회계 예산(14%)과 담배에 부과되는 부담금으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6%)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건강증진기금 지원 부분에 있다.

 법 본문에는 보험료 수입의 6%를 지원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부칙 조항에 '담배 부담금 예상 수입액의 6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이 조항이 발목을 잡아 애초에 6%를 다 채울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는 정부의 지원 부실을 심화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곳간은 비어가는 데 쓸 곳은 늘어난다

 상황이 이런데도 건강보험이 감당해야 할 몫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당장 우리 사회의 큰 숙제 중 하나인 '간병비 문제'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는 '간병비 급여화'가 본격적인 논의 궤도에 올랐다.

 또한, 아파서 일하지 못할 때 소득을 보장해주는 '상병수당' 제도 역시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상병수당 도입에만 연간 최대 1조5천억원 이상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에게 꼭 필요한 보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가장 큰 공동 책임자인 정부가 지금처럼 법적 의무마저 외면한다면, 늘어나는 지출의 부담은 결국 가입자인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법으로 정한 최소한의 지원마저 외면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더 큰 짐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으로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마저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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