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전복 황태해장국 [연합]</strong>](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518/art_17463560686461_447c5e.jpg)
한국 사람의 숙취 해소법에는 항상 해장국이 있다.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문제는 과음에 있다. 술을 자주 마시든, 특별한 날만 마시든, 몸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알코올은 뇌와 심장, 폐, 근육, 위장, 면역체계까지 광범위하게 건강을 해친다.
숙취란, 바로 술이 몸속에서 분해되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고통이다. 숙취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된 범인은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물질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효소에 의해 아세트산으로 변하고, 다시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심한 갈증, 두 통, 구토 같은 숙취 증상이 일어난다.
결국 숙취는, 우리 몸이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하고서야 비로소 끝난다. 그렇다면, 숙취를 가장 빠르게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옛사람은 술에 얽힌 다양한 상태를 구분해 이름 붙였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각'(覺), 술기운에서 깨어나는 것을 '성'(醒)이라 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감'이라 했고, 지나치게 마시면 '정', 심하게 마시면 '후'라 불렀다.
◇ 칡의 숙취 해소 기능
예부터 오랜 세월 숙취를 다스리는 데 가장 으뜸으로 꼽힌 식재 중 하나는 칡꽃이다. 칡꽃을 약선에선 맛이 달고 성질이 서늘하며, 독이 없어 비장과 위장을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칡꽃은 해주성비(解酒醒脾)라 해, 술을 깨게 하고 소화기를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다.
또한, 숙취로 인한 번민과 갈증(소갈구갈·煩渴口渴), 두통과 어지럼(두통두운·頭痛頭暈), 배의 더부룩함(완복창만·脘腹脹滿), 메스꺼움과 구토(구역토산·嘔逆吐酸), 식욕 부진(불사음식·不思飮食), 설사(주리·酒痢), 시큼한 가래를 토하는 증상(구토산담·嘔吐酸痰), 술독으로 인한 위장 장애(주독상위·酒毒傷胃), 토혈(吐血), 열을 내리고(소열·消熱), 폐의 열을 식히는 데(청폐·淸肺)에도 도움을 준다.
요컨대, 칡꽃은 술로 인한 온갖 고통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자연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 아버지를 위한 어머니의 해장국
어린 시절,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지는 술은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간다더라."
그만큼 아버지는 술을 사랑하셨고, 어머니는 자연스레 해장국에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7월 중순이 지나면 들판은 보랏빛 칡꽃으로 물들었다.
그즈음이면 어머니는 바구니를 챙겨 들고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니와 나는 나란히 들판을 걸었다.
활짝 핀 칡꽃을 한 송이, 두 송이 따 담았다. 어머니 한 바구니, 나도 한 바구니를 가득 채운 뒤, 집으로 돌아오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여러 번 헹궈 물기를 뺐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채반을 얹어 물을 끓였다. 김이 펄펄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솥뚜껑을 열고 칡꽃을 쏟아 넣었다. 어머니는 다시 솥뚜껑을 덮고 아궁이에 불을 세게 땠다.
김이 솟아오르면 1분 남짓 찐 다음, 익은 칡꽃을 채반에 펼쳐 열기를 빼고, 그늘진 곳에서 바람에 말려 보관했다. 이렇게 정성껏 말린 칡꽃은 아버지의 1년 해장국 재료가 됐다.
아버지가 술을 드신 다음 날 이른 아침이면, 어머니는 잘 불린 메밀에 칡꽃 한 줌을 넣어 조심스레 버무리셨다. 그것을 맷돌에 갈아 쌀과 콩나물은 같은 비율로 그리고 약간의 고춧가루를 섞고, 가마솥에 넣어 아궁이 불을 조절하며 30분 남짓 푹 끓이셨다.
메밀 해장국이 익어가는 동안 어머니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아, 술이란 적당히 마시면 좋은 약이지만, 지나치면 독이란다. 옛날 명나라의 이시진이라는 학자가 이렇게 말했지. 술을 조금 마시면 혈을 고르게 하고, 기를 순환시켜 정신을 북돋우며, 근심을 풀어준다고. 과하면 정신을 해치고, 혈을 소모하며, 위장을 상하게 하고, 정기를 잃게 한단다. 끝내는 병이 들고, 집안을 망치고, 심하면 나라까지 잃게 된다고 했지. 그러니 항상 술을 알맞게 마셔야 한다."
어머니는 덧붙이셨다.
"한 사람이 술을 마시면 한 집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한 집이 마시면 온 마을이 병에서 벗어난다고. 그러니 술을 가까이하되 조심하고, 감사히 여기며 마셔야 한단다."
해장국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차오르면, 어머니는 동치미 한 그릇을 곁들여 상을 차리셨다.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해장국을 들이키실 때 "어유, 시원하다!"라고 외치셨다. 어머니는 늘 같은 말로 잔소리를 건넸다.
"다음에는 좀 적게 드세요."
그날의 풍경과 그 말씀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 손자병법으로 본 해장국 만들기
손자병법 '모공(謨攻)의 장'에서 손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不戰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
이 내용을 현대인의 숙취 해장의 전략적 접근에 적용해 봤다.
숙취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성된 독성 물질(특히 아세트알데하이드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일종의 생리적 전장(戰場)이다. 이에 따라 신체는 두통, 메스꺼움, 탈수, 전신 무력감 등 다양한 증상을 겪게 된다. 따라서 해장이란 증상 완화를 넘어 체내 독소를 제거하고 손상된 신체 기능을 복구하는 복합적 과정이다.
먼저, 최상의 전략은 싸움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즉, 숙취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 대비를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음주를 절제해 적정량만 마셔 간의 해독 부담을 최소화한다.
음식은 음주 전후로 굴국밥, 시래깃국 등 간 보호와 해독 기능을 강화하는 식품을 섭취한다. 또한 알코올로 인한 탈수를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물을 마셔 수분을 보충한다.
그다음으로는 고립 전략을 들 수 있다. 이미 숙취가 발생한 이후라면 적절한 해장 전략을 통해 독소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즉 맞춤형 해장국을 선택한다. 콩나물국(아스파라긴 공급, 수분 보충), 북엇국(간 보호), 선짓국(혈액 보충) 등 개인의 상태에 맞는 해장 음식을 선택한다.
또한 과도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맵거나 기름진 음식은 지양하고, 위장과 간에 부담을 주지 않는 해장국을 섭취한다.
이어지는 전략으로는 정면 돌파도 있다. 이미 숙취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자극적 음식을 섭취하거나, 무리한 회복을 시도하는 경우다. 자극적 해장국 섭취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매운탕, 뼈해장국 등 강한 해장국은 위장 점막을 자극하고 간 기능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차적 손상이 발생한다. 과도한 위의 자극은 오히려 숙취를 장기화시키고 추가적인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럴 때는 그저 해장국을 먹지 말고 우선 견뎌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만 못한 선택지도 있다. 손자병법 모공의 장에는 계획과 역량 없이 성(城)을 공격하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라 나와 있다. 음주 후 '해장술'과 같은 잘못된 방법을 택하는 경우다. 이는 알코올 추가 섭취의 위험이다.
해장술은 일시적인 증상 완화를 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간에 이중 부담을 가중해 회복을 지연시킨다. 더구나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거나 고지방, 고열량 식품과 함께 음주를 지속하면 숙취는 물론 장기적인 인체의 간 손상, 소화기 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통 식문화에는 숙취 해장을 위한 전략적 해장국이 존재해왔다. 앞서 밝힌 대로 콩나물국은 아스파라긴과 수분 공급을 통한 간접적인 독소를 제거해 위장을 어루만진다.
북엇국은 메싸이오닌 등 간 해독을 돕는 아미노산이 풍부해 손상된 간을 다독이고 몸에 다시 생기를 심는다. 선짓국은 철분과 영양 보충으로 혈액 재생과 회복을 지원하는 보양식이다. 굴국밥이나 조개탕은 아미노산과 미네랄 보급으로 간 기능 강화해 회복의 뒷배를 든든히 한다. 시래깃국은 섬유질과 된장이 결합해 장을 깨끗이 비워 몸에 맑은 기운을 돌게 한다.
그러므로 숙취 해장은 속을 달래는 차원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으로 해야 한다.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은 곧 숙취를 예방하고, 발생 시에는 신체에 부담을 최소화하며 자연스러운 회복을 유도하는 지혜다.
결국, 최고의 해장 전략은 사전 예방이다. 숙취가 발생해도 자극을 피하고, 몸에 맞는 해장 음식을 섭취해 회복 중심의 관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숙취 후 해장은 몸을 위한 하나의 '전략적 전투'다. 무턱대고 강한 방법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이 다음 날을 다시 밝게 한다.
우리의 해장국은 술잔을 기울인 다음 날 아침,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식이다. 콩나물과 황태 같은 신선한 재료로 빚어낸 따뜻한 국물은 숙취로 지친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실제로 옛 궁중의 의서에도 주상(酒傷), 곧 숙취에는 대두황권(大豆黃卷), 어린 콩나물이 특효라 기록돼있다. 예전 효종갱(曉鐘羹·조선 시대에 끓여 먹었던 해장국으로 새벽에 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란 의미)이나 서울 종로 청진동 해장국 거리에서 볼 수 있듯,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은 숙취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 노력은 오늘날 수많은 해장국의 형태로 이어져 왔다.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 또한 우리나라 해장국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그들은 귀국 후에도 위키피디아나 블로그에, 한국에서 체험한 술, 안주, 음주 문화를 정성스럽게 기록하며 'K-해장국'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기쁨을 나누는 도구였으나, 동시에 몸을 피폐하게 만드는 독이기도 했다. 술잔이 오가고 감정이 무르익는 동안, 신체 깊숙이 스며든 알코올은 조용히 폐허를 남긴다.
숙취란 이 폐허의 잔해다. 이를 무턱대고 몰아내려 하기보다는, 지혜롭고 섬세한 회복이 필요하다. 그 전략이 바로 해장국에 담겨 있다.
'K-해장국'은 숙취를 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콩나물, 무, 황태, 선지, 우거지, 굴, 순대 등 각각의 재료가 가진 영양과 힘을 온전히 담아낸다. 그 다양성과 깊이는 한국 음식 문화의 풍요로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나라를 찾는 많은 이가 해장국 한 그릇에 담긴 오랜 지혜와 따스함을 경험할 때,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욱 깊고 다정하게 가슴에 스며들 것이다.
해장국에는 오랜 '강적' 숙취를 이겨낸 우리네 정신이 담겨있다. 수많은 외침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정신일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