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재난이나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게 정보는 뒤늦게 나오고, 불신은 먼저 번지는 현상이다. 이럴 때면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 위로처럼 오가기도 한다. 위기 앞에서 개인은 더 분주해졌지만, 사회는 오히려 더 느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가 '올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공동체 회복탄력성'(community resilience)을 선택해 눈길을 끈다.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는 심리학 발전과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1975년 설립된 학술단체로, 사회심리학과 성격심리학 분야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회에 따르면 공동체 회복탄력성은 재난이나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가 이를 사전에 준비하고, 충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단순한 복구를 넘어 학습과 적응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자연재해, 감염병, 정치적 격변, 경제 불안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공동체는 빠르게 무너지지만, 어떤 공동체는 충격을 견뎌내고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공동체 회복탄력성은 '개인 회복탄력성'보다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동체 회복탄력성의 핵심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시민 간 신뢰와 연대, 상호 지지로 이뤄진 사회적 자본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인 셈이다.
둘째는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 체계다. 위기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와 신뢰할 수 있는 소통은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고, 공동체 차원의 신속한 대응과 공동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는 공동체의 문제 해결 역량, 즉 집단적 대응 능력이다. 위기 속에서 강화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축적된 성공 경험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신감과 집단 효능감을 높이며, 이후 위기에도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이뤄진 실증 연구 결과도 공동체 회복탄력성의 이 같은 효과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수행된 연구를 보면 공동체 회복탄력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팬데믹이나 경제 충격 이후 주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수준이 낮고, 정신·신체 건강 지표와 학교·직장 성과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공동체 회복탄력성은 오프라인 공간뿐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도 개인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속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지지망이 공동체 회복탄력성을 증진했고, 이는 높은 긍정 정서와 낮은 부정 정서와 관련됐다는 연구 결과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개념이 위기가 닥친 후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형성된 신뢰 관계와 참여 경험, 학습의 축적이 위기의 순간에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학회는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국가, 공동체, 개인 차원의 유기적인 결합을 주문했다.
국가 차원의 투명한 정보 제공과 신뢰 행정, 지역 사회의 자발적 네트워크, 온오프라인을 통한 개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맞물릴 때 공동체 회복탄력성이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이다.
학회 관계자는 "공동체 회복탄력성은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일회성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구축해야 할 공공의 자산"이라며 "한국 사회가 반복되는 복합 위기를 슬기롭게 넘어가기 위해 이제는 '각자 버티는 사회'에서 '함께 회복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