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조상은 세시풍속에 따라 그에 알맞은 음식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정월에는 떡국, 식혜, 수정과,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다. 3, 4월에는 화전과 미나리강회를, 7월에는 삼계탕, 8월 추석에는 송편을 해 먹고 10월에는 김장을 한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고, 섣달에는 동치미, 호박범벅, 조청을 먹었다. 그와 함께하는 술로 설날에는 '세주'(歲酒·한 해 동안의 무병장수를 위해 설날에 마시는 술)인 도소주(屠蘇酒)를 마셨다.
세주인 도소주의 기원은 중국이다. 후한(後漢) 시대 명의 화타(華陀)가 처음 만들었다고도 하고, 당나라 손사막(孫思邈)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상류층에 전해 내려왔다. 고려시대는 흔히 마셨지만, 조선시대는 덜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중국에서는 도소주를 마시는 풍속이 거의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최근 전통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 도소주에 의미를 담아 즐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세주는 데우지 않고 찬술을 그대로 마시는데 전혀 가공하지 않은, 즉 끓이거나 데우지 않은 가장 원초적(시작)임을 뜻한다.
도소주의 도(屠)는 '때려잡는다'라는 의미이고 소(蘇)는 '사악한 기운'을 말하며 옛날의 사악한 기운은 전염병을 말한다.
즉, 도소주는 한 해 동안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술이다. 술이라고는 하지만 술을 팔팔 끓여서 알코올은 사실 없다.
그래서 어린이도 마실 수 있었기에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낸 후 온 가족이 동쪽을 향해 앉아, 나이가 가장 어린애부터 어른 순으로 차례차례 마셨다.
유교문화의 장유유서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지만, 어린아이가 전염병에 보다 취약하기도 했고 또 나이 어린 사람은 한 살 더 먹는 것을 축하해주고 나이 든 사람은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술 마시는 순서에 나타났다고도 본다.
모두가 동쪽을 향해 앉는 이유는 동쪽이 해가 뜨는 방향이기 때문인데 새해 첫날부터 양기를 받아 일 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나이 들어감을 쓸쓸해하며 그것을 도소주를 마시는 순서에 빗대어 쓴 재미난 시(詩)가 있다.
신정(申晸·1628∼1687)이 '분애유고'(汾厓遺稿)의 '원조'(元朝) 편에 "도소주를 가장 나중에 마신다 고 한탄하지 말게나, 이 몸도 역시 일찍이 소년이었다네"라고 쓴 내용이나 임상원(任相元)이 '염헌집'(恬軒集)의 '정사원일'(丁巳元日) 편에 "도소주를 마실 때 내 나이 많아졌음을 깨달았네"라고 쓴 시구가 그러하다.

도소주를 만드는 방법은 동의보감에 기록돼있다.
대황, 백출, 산초, 도라지, 천오(독성이 강해 현대에는 제외), 호장근, 계심 등 일곱 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음력 12월 그믐에 약재를 넣은 붉은 주머니를 우물 속에 담갔다가 정월 초하루 새벽에 꺼내 맑은 술에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식혀서 마셨다.
맑은술에 우려낸 약재 주머니는 다시 우물에 담가뒀다.
우물을 함께 사용하는 온 동네 사람들도 함께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도소주를 만들지 못하였을 때는 다른 약주나 청주를 도소주라고 하여 마시기도 했다.
또, 향료와 계피 등을 넣어 약주처럼 마셨다. 정월 초하루에 마시는 술을 그냥 도소주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배상면주가에서 매년 한정판으로 도소주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올해에도 '2025 도소주'를 2천25병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다만 이 도소주는 12도 도수가 있다.

집에서 초간단 도소주를 만드는 법을 소개하면 먼저 약주나 청주를 준비한다.
약재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삼계탕 약재 팩을 구입하면 된다.
준비된 술과 약재 팩을 함께 오래 끓여서 알코올을 모두 증발시키면 도소주가 완성된다.
이번 설날에 차례 후 모두 모여앉아 도소주의 의미를 되새기며 함께 한잔씩 마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