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 5분의 1을 넘는 초고령 사회다.
의료 기술 발달, 의식주 환경 개선 등에 힘입어 수십 년간 기대수명이 급증한 결과다.
100세 시대 임박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릴 정도다. 최근 발표한 정부 통계에서 작년 출생자 기대수명은 83.7세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문제는 아프지 않고 사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이 기대수명의 빠른 증가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같은 통계에서 건강수명은 65.5세였다.
나머지 18.2년은 병약한 상태로 보낸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점점 오래 살게 된 건 맞지만,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관점에 따라 기대수명이 짧더라도 건강수명과 별 차이가 나지 않던 예전 세대의 삶보다 더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조력 존엄사 도입 논의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웰다잉을 도울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조력 존엄사는 말기 난치 환자 등이 의료진 도움으로 사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연명치료 중단보다 더 적극적이다. 도입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무슨 이유인지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그렇다면 초고령 사회에서 먼저 호스피스 의료라도 충분히 활성화돼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보인다.
무엇보다 호스피스 병상이 매우 부족한 게 가장 문제다.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은 주로 말기 암 환자들에 제공되는데, 이들조차 병상이 부족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 전에 대기 중 사망하는 사례가 자주 들린다. 유럽완화의료협회(EAPC)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최소 50개 호스피스 병상이 있어야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 35개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암 사망자를 감당하기도 벅찬 수준이고 다른 중증 환자들은 서비스 접근성이 더 크게 떨어진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2028년까지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360곳으로 확충해 이용률도 2023년 말 기준 33%에서 50%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 등 5가지로 제한된 대상 질환도 늘리기로 했다.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 시기와 중단 시점도 앞당기도록 논의 중이다.
다만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가운데 많은 중증 환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호스피스 병상수를 최대한 빨리 충족시키도록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전문인력 부족, 호스피스 기관 연계 문제 등까지 함께 해결하고 보완해야 한다.
그러려면 필요한 건 결국 돈이다. 예산 투입 우선순위를 정할 때 국민의 이런 애로가 먼저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말기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말기 환자 및 가족들의 고통 경감과 삶의 질 향상, 환자의 자기 결정권 보장 강화라는 뚜렷한 정책 목표를 갖고 정부가 진지하게 접근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