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단순히 피 흐르는 관 아니다…비만 치료 열쇠 될 수도"

스페인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연구소, '네이처 물질대사'에 논문

 인간의 체내 혈관은 그 구조와 기능에 따라 동맥, 정맥, 모세혈관으로 나눌 수 있다.

 동맥은 산소와 영양분을 함유한 혈액을 심장으로부터 온몸 구석구석에 보내, 모세혈관과 주변 조직 사이에서 물질교환이 이뤄지게 한다.

 그다음에 말초 세포 및 조직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혈관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그런데도 혈관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단순히 혈액을 운반하는 비활성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과학계의 이런 통념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알고 보니 혈관은 체내의 생리적 변화를 감지해 여러 기관의 기능을 제어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이 발견은 장차 혈관 반응을 조절해서 비만 등 대사질환을 치료하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스페인의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연구소(Josep Carreras Leukaemia Research Institute) 과학자들이 주도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물질대사'(Nature Metabolism)에 논문으로 실렸다.

 21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번 연구의 초점은 지방 조직의 혈관이 비만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데 맞춰졌다.

비만은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해 생기는 대사질환이다.

 하지만 비만의 근본 원인을 꼽자면 지방 조직, 특히 백색지방(WAT)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방 조직도 혈액 공급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실, 백색지방의 항상성이 유지되려면 혈관 내벽 상피세포(ECs)와 지방세포의 상호작용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백색지방이 증가할 땐 혈관 생성도 활성화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비만한 사람은 이 생리 과정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지방 조직이 커져도 혈관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혈관 상피세포와 지방세포 사이에서 이런 '혼선(crosstalk)'이 빚어지게 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는 혈관이 주변의 지방 조직에 어떤 지시를 내려 지방의 관리를 통제하는 것과 유사했다.

 생쥐 모델에 실험한 결과, 혈관 상피세포의 폴리아민(polyamines) 생성이 지방세포의 지방 분해를 자극해 지방조직의 항상성을 조절했다.

 혈관 상피세포가 폴리아민을 생성하면 지방세포가 지방을 분비했고, 혈관은 다시 이 지방을 흡수해 자기 세포를 늘리는 자양분으로 썼다.

 핵심은, 혈관 상피세포의 폴리아민 생성이 백색지방 조직의 지방 분해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 조직 내에 혈관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고,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따라 비만의 발달 정도가 달라졌다.

 실제로 지방 조직의 혈관 기능이 강화된 생쥐 모델은 비만의 발달에 저항했다.

 이번 실험에선 또 역설적인 현상이 하나 관찰됐다.

 혈관이 폴리아민을 생성해 지방조직을 제어하는 메커니즘이 전립선암의 세포 증식에도 거의 똑같이 이용된다는 것이다.

 혈관 상피에서 PTEN(4 질산 펜타에리트리톨)을 제거하면 세포 자율(cell-autonomous) 방식으로 혈관이 더 많이 생겼고, 체중 감소와 비만 완화를 특징으로 하는 백색지방 선택성(WAT-selective) 표현형이 생겼다. PTEN은 암을 억제하는 물질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포를 증식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혈관은 이 메커니즘을 이용해 통제된 방식으로 세포를 증식했다. 하지만 전립선암 종양은 같은 메커니즘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무한증식했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마리오나 그라우페라 박사는 "몸 안의 각 기관에서 혈관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건 체내 부위에 따라 혈관이 특화돼 있다는 걸 시사한다"라면서 "이 발견은 혈관 조절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개선하는 흥미로운 기회를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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